가족의 따뜻한 사랑 그린 영화 '루나 파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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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꿨다. 배경은 흐리지만 구름같이 가벼운 땅 위를 달리고, 대지처럼 편안한 허공을 날아 올랐다. 때론 슬프다가 때론 기쁨에 벅차기도 했던 기억이 명징하다. 잠자리에서 일어나 거울을 보고 슬며시 웃다가 겸연쩍어 한다. 그런 기억 속에 혼자 그리워만 하던 상대와 나눈 밀어가 왜 없었겠는가.

'루나 파파' 는 방금 꿈을 꾼 듯한 느낌을 주는 영화다.

비행기에 싣고 가던 황소가 결혼식장에 떨어져 신랑이 맞아 죽는다는 등 황당한 설정이 한 둘 아니지만 영화는 내내 신나고 즐겁다.

러시아 출신 바크티아르 쿠도아나자로프 감독이 독특한 상상력과 기발한 아이디어의 팬터지 기법으로 따뜻한 가족애를 그려낸다.

마치 가난하지만 떠들썩한 축제가 집시 음악에 실려 화면을 가득 채우는 에밀 쿠스트리차 감독의 작품을 보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는가 하면, 소와 사람의 얼굴이 마주하는 샤갈의 초현실적 그림을 머리 속에 맴돌게도 한다.

톰 크루즈를 흠모하면서도 셰익스피어 연극에 목을 메는 열일곱 살 소녀 말라카(슐판 카마토바) . 무지막지하지만 따뜻한 마음을 지닌 아버지 자파르(아토 무카메자노프) . 그리고 전쟁 휴유증으로 정신연령이 세 살이 돼버린 오빠 나세르딘(모리츠 블라입트르) .

엄마를 일찍 저 세상으로 보낸 식구들은 어려운 살림에도 행복하기 그지 없다. 그러다 말라카가 사고를 치는 바람에 그들의 가정은 그만 쑥대밭이 되고 만다.

극장 주변을 맴돌던 어느날 밤, 달빛 그윽한 숲 속에서 "난 톰 크루즈와 친구야" 라고 속삭이는 남자의 부드러운 목소리에 홀려 그만 임신을 하고 만다.

자파르는 머리를 땅 속에 박으며 괴로워 하고 온 가족은 아기 아빠 찾기에 나선다.

여기서부터 가족의 모험담은 로드 무비의 형식을 띠며 중앙아시아 타지크스탄의 아름다운 카스피해 전경을 보듬는다.

때론 악당의 공격에 역습을 가하는 가족 갱단으로 변했다가 아기 아빠로 의심되는 사내들을 하나씩 자루에 담는 납치극까지 벌이는 이들. 연극 공연장이나 마을을 엉망으로 만들 정도로 좌충우돌하는 세 식구의 행동은 산만하기 그지 없다.

하지만 쿠도아나자로프 감독은 관객의 이해를 요구하는데 그치지 않고 영화 속으로 빠져들게 만드는 힘을 발휘한다.

이는 '제2의 쿠스트리차' 라고 불리는 쿠도아나자로프 감독이 기대고 있는 팬터지적 기법 역시 동화.풍자의 형태에 가리워진 '현실' 을 이면에 깔고 있기 때문이다.

'루나 파파' 는 배경이 중앙아시아여서 그곳 영화로 비치지만 다국적 자본이 참여했고 말라카와 나세르딘도 각각 러시아와 독일 출신이다.

아버지 자파르는 타지키스탄 공화국에서 '명예 예술가' 칭호를 받는 국민배우. 지난해 낭트 영화제에서 그랑프리를 수상했으며 토론토.베니스.선댄스.부산영화제 등에 출품돼 호평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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