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 박찬호, 159㎞ 한기주, 158㎞ 엄정욱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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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파이어볼러(fireballer). 모든 투수의 꿈이다. 야구계에선 파이어볼러를 ‘시속 150㎞ 이상의 공을 주무기로 삼는 선수’로 통칭한다. 불같은 강속구, 즉 빠른 포심의 기준이 ‘150’인 것이다.

 이 정의에 따르면 국내 파이어볼러 1세대는 최동원(작고)과 선동열(49·KIA 감독)이다. 1980년대 한국 야구를 대표한 두 라이벌은 전성기에 150㎞ 넘는 공을 던지며 타자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90년대 파이어볼러로는 박동희(작고)와 박찬호(39·한화)가 대표적이다. 1990년 롯데에서 데뷔한 ‘수퍼 베이비’ 박동희는 1991년 최고 시속 157㎞를 기록했다. LA 다저스 소속이던 박찬호도 첫 풀타임 시즌인 1996년 시속 161㎞(100마일)의 강속구를 심심찮게 뿌리곤 했다.

 이후 잠시 끊겼던 파이어볼러 계보는 훈련과 신체조건의 발달 속에 2000년대 초·중반부터 다시 살아났다. SK 엄정욱(31)이 2003년 158㎞를 전광판에 찍어 국내 최고기록을 세웠다. KIA 한기주(25)는 2007년 159㎞를 기록하며 엄정욱을 넘어섰다. 지난해 LG 외국인 선수 리즈(29)가 161㎞로 국내 선수들의 기록을 경신했지만 오승환(30), 권혁(29·이상 삼성) 등 새로운 파이어볼러들이 등장하고 있다.

 대부분의 파이어볼러는 특징이 비슷하다. 제구보다는 빠른 공을 내세워 구위로 타자를 눌러버린다. 다양한 구질을 개발하기보다는 자신의 주무기를 최대한 활용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팬들 역시 시원하게 삼진을 잡는 모습에 환호한다.

 부정적인 측면도 있다. 우선 부상의 위험이 높다. 롱런 사례도 있지만 오랜 부상에 시달린 박동희·엄정욱 같은 선수들도 있다. 그만큼 빠른 공을 던진다는 건 타자를 압도하는 동시에 자신을 혹사시키는 ‘양날의 검’이 될 수도 있다. 특히 빠른 공에 의존하는 투수일수록 나이가 들고 힘이 떨어지면 주무기를 잃게 되면서 제구력 중심의 투수에 비해 무너질 가능성이 커진다. 상당수 파이어볼러들이 짧은 기간 만개했다 사라지거나 고생하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정종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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