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씩 아픔 있는 중년 … ‘황인뢰표 드라마’ 보여줄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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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BC 수목극 ‘러브어게인’으로 돌아온 황인뢰 감독. 드라마마다 수려한 영상을 보여줬던 그는 “흔히 볼 수 있는 도시의 모습이라도 카메라를 달리 잡아 새롭게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김도훈 기자]

황인뢰(58) 감독. 한국 드라마계에서 보기 드문 작가주의 연출자다. 그가 ‘궁’(2006)을 들고 나왔을 때 많은 이들이 의아해했다. 10대 소재, 로맨틱 코미디, 신데렐라 스토리, 가상의 세계, 만화적 터치 등은 황 감독의 주종목이 아니었다. 후속작 ‘궁S’(2007) ‘장난스런 키스’(2010)도 그랬다. ‘궁’이 큰 성공을 거뒀지만 “어른들의 이야기를 하는 1990년대의 황인뢰가 보고 싶다”는 반응도 많았다.

 황 감독은 사실 중년의 흔들리는 심연을 낚아채는 데 일가견이 있었다. ‘여자는 무엇으로 사는가’(1990) ‘고개 숙인 남자’(1991) ‘연애의 기초’(1995) 등이 그랬다. 25일 시작하는 JTBC 수목극 ‘러브 어게인’(오후 8시 45분)은 그런 의미에서 ‘황인뢰표 드라마’의 본격 복귀 선언이다. 23일 제작발표회에서 만난 그는 예순을 앞둔 나이가 무색하게 날렵한 몸매에 청년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JTBC 수목드라마 ‘러브 어게인’의 김지수(왼쪽)·류정한. 동창회에서 다시 만난 첫사랑이다.

 -오랜만에 중견 배우들과 작업하는 것 같다.

 “신인들은 에너지가 넘쳐서 좋았는데, 한편으론 농익은 배우들과 일하고 싶었다. 원래 극성이 강한 이야기보다 인간 심리의 구석구석을 잔잔하게 그리는 것을 좋아했다. 전공으로 돌아온 셈이다. 일단 배우들이 다 알아서 준비해오니까 편하긴 하더라.”(웃음)

 ‘러브 어게인’은 중학교 동창회를 계기로 다시 만난 40대 중년들의 사랑 이야기다. 서로 첫사랑이었던 지현(김지수)·영욱(류정한)과 태진(최철호)·미희(이아현)는 동창회에서 만났던 우철(김진근)과 선주(윤예희)가 실종되자 이들을 찾아 나서고, 그 과정에서 다시 사랑에 빠진다. 원작은 일본 아사히TV에서 2010년 방송됐던 동명의 드라마. 의학드라마 ‘하얀거탑’의 김은희 작가가 대본을 썼다.

 -불륜 이야기다. 이 작품에서 ‘불륜’은 어떤 색깔인가.

 “중년들의 사랑도 소년, 소녀들의 사랑만큼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이 포인트다. 불륜 하면 지저분한 게 떠오르는데 그 흔한 키스신, 베드신 없이 맑고 순수하게 이어진다.”

 -키스신이 없다?

 “원작엔 없다. 현재 4회까지 촬영했는데 아직까진 없었다. 그 이후에 작가가 넣을 수 있으니 장담할 순 없겠다.”(웃음)

 -영화 ‘건축학개론’도 그렇고 첫사랑을 소재로 한 것이 인기다.

 “‘러브 어게인’을 보면서도 옛사랑을 떠올렸으면 좋겠다. 의도적으로 드라마 본편엔 플래시백(중학생 때 이야기)을 뺐다. 대신 여운이 남도록 엔딩 자막까지 다 올라간 후에 2분 정도 ‘에필로그’로 과거 이야기를 넣었다. 윤형주의 ‘우리들의 이야기’처럼 80년대 유행가가 배경음악에 깔릴 거다. 당시는 교복 자율화 시대였는데 일부러 시골학교를 배경으로 교복을 입혔다. 이상하게 옛날 교복 입은 애들만 보며 눈물 나더라.”

 -부제가 ‘일생에서 단 한번 오는 사랑’인데, 실제 그런 경험이 있나.

 “여러 번 왔으면 좋겠는데. 하하. 마흔 살쯤 그런 생각이 들더라. 내 인생에 앞으로 연애감정이 또 생길까. 두근거리고 잠 못 이루고 그런 게 다신 안 오겠지 생각하니 왠지 쓸쓸했다.”

 -옛사랑에 집착하는 건 현재의 삶이 고독하다는 반증인 것 같다.

 “한국사회가 빨리 성장하다 보니 후유증이 많다. 오로지 돈만 쫓고 서로 비교하게 되고. 속도감에 피로를 느낀다. 그게 한국 중년들의 아픔이다. 지현(김지수)의 남편은 명문대를 졸업한 엘리트였는데 명예퇴직을 당한 스트레스를 아내한테 푼다. 모두들 하나씩 아픔이 있는 사람으로 그릴 거다.”

 황 감독은 최근 푸치니의 오페라 ‘나비부인’을 연출했다. 드라마·영화·연극·뮤지컬에 이어 오페라까지 진출한 셈이다. 그는 “무대 연출은 드라마와 달리 한달 이상 연습하는 과정을 지켜볼 수 있다는 게 색다르다”고 했다. 지치지 않는 창작욕에 체력이 달리지는 않냐고 물었다. “차만 타면 잔다. 대학 때부터 펜싱 했는데 그 힘으로 버틴다. 연출은 최대한 오래하는 게 목표다. 그러면 좋은 것도 얻어걸리고 하겠지.” (웃음)

‘러브 어게인’ 제작발표회 말말말

▶ 황인뢰 감독

“ (첫사랑이 언제였나?) 나는 멋대가리가 없어서 대학교 1학년 때 만난 첫사랑과 지금까지 살고 있다.”

▶ 김지수

“ 중학생 아이를 둔 엄마 역할은 처음이다. 3~4년 전부터 엄마 역할을 해야겠다는 생각은 있었다. 이 작품을 시작으로 앞으로 작품 선택에 자유로워 질 것 같다. 오히려 마음이 편하다.” “디테일에 강한 황 감독님이 ‘포옹할 때 주춤거리면서 다가가는 발 연기를 해달라’고 해서 당황했다”(웃음)

▶ 류정한

“ 뮤지컬 배우를 하다가 첫 드라마 도전이다. 하이라이트 영상을 보면서 오글거리긴 했는데 나만 잘하면 될 것 같다.”

▶ 윤예희

“ 대본을 보고 우리 또래의 이야기구나 생각했다. 마흔이 넘어서 그 때 아이들은 뭐하고 살까. 아 그런 시절이 나에게도 있었지. 추억하는 드라마다.”

▶ 유태웅

“ 내가 남자 출연자 중에 막내(40)다. 또 유일하게 나만 짝이 없다. 감독님이 제 짝이 아닐까 생각해봤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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