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지식] 세계는 길 잃은 점보여객기 … 기장이 없다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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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세계는 누가
지배할 것인가
자크 아탈리 지음
권지현 옮김, 청림출판
360면, 1만6000원

최근 단행본 중 가장 시선이 넓고 스케일도 크다. 너무 크면 허황한데, 그것도 아니다. 지구촌 경제위기와 자연재앙을 다스릴 최선의 해법은 없을까. 새로운 성장과 민주주의를 되찾기 위해 세계정부 수립을 감히 꿈꿀 순 없을까. 프랑스의 지성 자크 아탈리(69)의 신작이다.

 아탈리, 그는 ‘학력으로만 본다면 프랑스의 대통령 감’이다. 미테랑 전 대통령 시절 특보(特補)를 지냈고, 국제기구에 두루 참여한 그가 볼 때 지금 세상이 심상치 않다. ‘세계는 거대한 소말리아’(285쪽) 꼴이라서 기존 국가권력은 껍데기만 남았고, 용병·해적이 설쳐대는 모양새이다.

 미국을 포함한 강대국도 마찬가지다. 글로벌 기업들은 국가의 울타리를 벗어나려 할 것이고, 민주주의는 희박해졌다. 무기·마약 거래는 물론 인간 장기(臟器) 밀거래도 더욱 성행할 것이다. 지구 차원의 테러도 걱정이다.

 그렇다면 우리 운명을 새롭게 결정할 세계정부를 왜 생각 못할까. 미국? 여전히 슈퍼파워로 남겠고, 중국도 G2의 하나이지만 그들이 패권을 행사할 순 없다. 각국이 그걸 용납하지 않겠고, 지구촌 90억 명(2050년)을 위한 안전과 연대를 보장할 돈도, 힘도 그들에겐 없다. 아탈리의 비전이 너무 거창한 담론일까.

 그렇게 느낀다면, 작은 나라 한국인의 한계는 아닐까. 철학자 칼 포퍼가 무장력을 갖춘 세계정부를 제안한 게 1945년 (『열린 사회와 그 적들』)이다. 칸트도 영구평화를 위해 보편 제국이 지배하는 비전을 선보였다. 요즘 중국인도 옛 천하(天下)를 들먹이는 판에 우리만 우물 안 개구리로 산다.

 세계정부론은 한반도에서 아옹다옹하는 우리 시야를 크게 넓혀준다. 그만 해도 본전은 건지는데, 궁금증이 꼬리를 물 것이다. 세계정부는 기존 국가를 과연 대체하는 것인가. 유엔은 어찌되고, 숱한 국제기구의 역할은 어찌 바뀔까.

 그걸 구체적으로 알려면 이 책을 읽는 게 지름길이다. “역사는 진공(眞空)을 싫어한다”는 역사학자 니얼 퍼거슨의 말이 떠오른다. 아탈리가 보기에 지금 세계는 비유컨대 진공 상태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초대형 비행기이다. 조종할 기장도 없지만, 아예 조종실도 만들어놓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그렇다면 ‘지구촌 비행기’를 위한 조종실을 설계하고, 운용하자는 제안이 이 책이다. 실은 책의 상당 대목이 세계사인데, 태초 이래로 역사는 세계의 중심을 차지하려는 싸움의 과정으로 풀이된다. 누가 세계의 중심이 될 것인가, 잠시 거장의 어깨 위 올라가 세상을 바라보는 기회가 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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