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아니면 죽음을.." 닭들의 대탈출기 '치킨 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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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아깝지 않은 오락영화, 어른이 더 좋아하는 가족영화. 클레이메이션 '치킨 런' 은 불가능해 보이는 이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은 유쾌한 영화다. 관심사와 감성코드가 전혀 다른 세대들을 모두 사로잡는 기발한 상상들이 끊임없이 펼쳐지기 때문이다.

'닭장 밖의 자유를 꿈꾸며 음모를 꾸미는 닭' 이라는 아이디어가 '치킨 런' 의 중심 줄거리다.

자유는 인간만이 소유할 수 있는 가치라는 고정관념을 비웃기라도 하듯, 닭들은 나치수용소를 다룬 전쟁영화 '대탈주' 와 '17번 수용소' 를 흉내내며 17번 막사에 모여 매일밤 탈출음모를 꾸민다. 아이디어 뱅크는 이쁜이 진저. 영국 요크셔 지방의 트위디 부부의 양계장에 사는 진저는 매일밤 탈출을 진두지휘한다.

숟가락으로 닭장 울타리 밑을 파거나, 위장술을 써보기도 하고, 막사 아래서부터 철창 밖으로 터널을 뚫기도 한다.

혼자만의 탈출이라면 진작에 성공했겠지만 진저는 '수용소' 식구들을 모두 탈출시키려다 번번이 망을 보던 트위디씨에게 잡혀 '독방' (쓰레기통)신세를 진다.

실패에 실패를 거듭해도 포기하지 않는 진저의 기도에 하늘이 답이라도 하듯 어느날 밤 하늘을 날으는 미국 수탉(멜 깁슨)로키가 '프리~덤(자유)' 을 외치며 날아든다. 로키는 '자유의 방랑자' 라고 떠벌리지만 실은 서커스단에서 도망쳐온 신세. 진저는 로키를 숨겨주는 대신 나는 방법을 배우기로 한다.

스트레칭은 기본이고 태권도에 한팔로 팔굽혀펴기.멀리뛰기.러닝 등 암탉들의 강도높은 비행훈련이 펼쳐진다.

단 한장면도 놓치기 아까울 만큼 잘 짜여진 영화지만 특히 이 비행연습 장면과 록키가 마련한 암탉들의 댄스파티, 치킨파이 기계 속에서 벌어지는 진저와 로키의 모험은 관객의 눈을 의심하게 만들 정도로 생동감 넘친다. 수십개의 캐릭터들이 각기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는 장면을 완벽하게 표현해냈기 때문이다.

보는 재미도 재미지만 '치킨 런' 이 1초당 24개의 정지된 동작이 필요한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이란 사실을 떠올리면 더욱 감탄하게 된다.

하이테크 만능인 디지털 시대에 클레이메이션 '월레스와 그로밋' 으로 아카데미상을 휩쓴 아드만사의 피터 로드와 닉 파크 감독은 고지식하게 동작 하나하나를 따로따로 촬영하는 로우테크를 고집해 상영시간 84분짜리 영화를 4년에 걸쳐 만들었다.

모델 제작에 쓰인 플래스틱 점토만 4t 이상 들었다. 등장하는 닭은 1백마리 안팎이지만 트위디 부부와 함께 등장하는 장면, 또 원근감 표현을 위해 같은 캐릭터도 각기 다른 크기로 만들어 모두 4백마리가 넘는 닭모델을 제작했다고 한다.

애니메이션이란 단어의 정의 그대로 마치 영혼을 머금은 듯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닭을 보는 재미와 함께 미국사람을 조롱하는 영국식 유머, 그리고 마녀 아니면 바보로 묘사되는 사람을 만나는 것도 이 영화만의 재미다. 16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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