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E] 멀티 아티스트 한젬마의 신문 활용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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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티 아티스트 한젬마씨는 “신문이건 책이건 그 권위에 눌리지 말고 필요한 정보를 거침없이 뜯고 찢어내야 내 것으로 활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황정옥 기자]

‘그림 읽어주는 여자’로 불리는 멀티 아티스트 한젬마(42)씨는 “예술가는 세상의 흐름을 읽고 선도하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자신의 세계를 창조하겠다며 은둔만해서는 훌륭한 예술가가 될 수 없다는 말이다. 그가 대학 시절부터 매일 신문을 3~4부씩 읽으며 관심 분야를 꾸준히 스크랩해 온 것도 훌륭한 예술가가 되기 위한 노력이었다. 최근엔 신문으로 어린 딸과 다양한 놀이를 하며 신문활용교육(NIE)를 실천하고 있다. 한씨가 소개하는 ‘놀이처럼 즐거운 신문 읽기’에 대해 들어봤다.

글=박형수 기자
사진=황정옥 기자

한씨가 신문 읽기에 열을 올리게 된 건 미디어 아티스트로 유명한 고 백남준(1932~2006)씨 덕분이다. “백남준 선생님이 제 인생의 롤 모델이었죠. 그분이 하루에 신문을 대여섯 종씩 탐독하셨대요. 우리나라 신문뿐 아니라 미국의 뉴욕 타임스나 유럽의 유명 일간지를 두루 섭렵하는 거죠. 그분의 작품에 지구적·우주적인 관점의 세계관이 녹아 있는 건 신문의 영향이 컸다는 생각이 들어요.”

 한씨 역시 우리나라 신문 외에 독일의 스피겔, 유로 저널 EK 뉴스, 뉴욕 타임스 등 세계의 여러 신문을 두루 살펴본다. 예술가가 시사 현안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예술은 시대를 꿰뚫고 앞서나가는 메시지를 담아내야 하거든요. 그러니 예술가에게는 누구보다 빠른 정보가 필요합니다.”

사건 배경 짚고 의미 생각하는 기자적인 시각 키워

그가 신문을 보는 방식은 ‘뜯고 찢기’다. 필요한 정보가 눈에 띄면 거침없이 찢어내 작은 노트나 파일에 모아둔다. 책이나 잡지를 볼 때도 마찬가지다. “신문이든 책이든, 미디어가 나를 위해 존재하는 거지 내가 미디어를 위해 존재하는 건 아니에요. 책장에 꽂아두기보다 영감이 떠오를 때면 언제든 참고할 수 있게 뜯고 오려내는 게 정보를 훨씬 가치 있게 활용하는 것이죠.”

 신문을 읽으며 얻은 한씨만의 ‘선구안’은 그의 작품에 고스란히 녹아 들어 있다. 그가 참여한 공공미술 작품에는 장소와 환경에 대한 종합적인 고찰이 담겨 있다. 작품이 들어설 장소의 역사성이나 신화성, 주변과 연관성, 지역 주민의 참여성을 고려해 작품에 담길 메시지를 정하는 식이다. “신문을 통해 얻은 입체적인 시각 덕분에 ‘하나 더’ 생각하는 습관이 생긴 덕분이죠. 기자들이 그렇잖아요. 하나의 사건이 발생하면 겉에 드러난 내용만 훑어주는 게 아니라 사건의 원인과 배경을 짚어주고 역사적으로 비슷한 사건이 있었나를 밝혀주죠. 이와 함께 최근 여러 사건들과의 연관성 속에서 이번 사건의 의미도 고찰해 주죠. 작품을 만들 때도 이런 기자적인 시각을 가져야 시대와 역사와 소통할 수 있는 메시지를 담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딸과 신문 펴 놓고 단어 찾기·사각형 찾기 놀이

한씨는 여섯 살 딸 혜연이와 함께 미술 놀이를 할 때도 신문을 애용한다. 신문 종이는 잡지나 책의 종이와 달리 크고 얇고 유연해 아이가 종이에 베이거나 다칠 염려가 없기 때문이다. 신문의 레이아웃이 모두 사각형으로 이뤄져 있다는 점에 착안해 신문 한 면에서 사각형 찾기 놀이도 자주 한다. 혜연이가 글자를 막 익히기 시작하는 단계에선 ‘단어 찾기’ 놀이도 했다. 한씨가 ‘엄마’라는 단어를 제시하면 혜연이는 신문 한 면에 실린 글자 중에 ‘엄’자와 ‘마’자를 빨리 찾아내는 식이다.

 “어린 시절부터 신문이 만만하고 재미있는 매체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게 NIE의 시작이라고 생각해요. 어렸을 때 ‘신문은 딱딱하고 어른들이나 보는 것’이라고 생각했다가 입시가 코앞에 닥쳐서 신문을 들이밀면 얼마나 부담스럽겠어요. 지금은 신문을 실컷 만지고 찢어가면서 친숙한 느낌을 심어주는 데서 멈추는 게 지혜가 아닐까요.”

 최근에 신문에 대해 새롭게 깨달은 사실도 있다. “나도 모르고 있던 나의 관심사를 신문을 보다 깨달을 때가 종종 있어요. 신문을 펼치면 다양한 기사 속에서 내가 무엇을 찾아 읽고 있는지, 어떤 정보에 빠지는지 자각하게 되거든요. 이게 바로 신문의 묘미인 것 같아요.”

 잡지는 미술·과학·경제처럼 특정 영역을 다루기에 자유롭게 관심사에 빠져들 여유를 주지 않고, TV는 방송사에서 주는 영상물에 수동적으로 반응하는 데서 그치고 만다.

 “신문은 여러 기사가 펼쳐진 가운데 독자가 무엇을 읽을지, 어디서 멈출지 자유로운 선택권이 주어지는 게 매력이에요. 여러분도 신문을 읽다 자아를 찾는 기쁨을 누려보면 좋겠습니다.”

멀티아티스트 한젬마에게 신문이란 ‘조각보자기’다

한젬마는 “나는 신문을 조각내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스스로를 ‘스크랩의 여왕’이라 부를 정도로 신문 기사를 찢고 뜯어 스크랩한 뒤 거기서 얻은 정보를 ‘예술’이라는 방식으로 구현해 왔기 때문이다. 조각보는 크기도 질감도 다른 천 조각이 모여 아름다운 보자기로 탈바꿈한 것이다. 한씨는 “조각난 기사들을 나만의 방식으로 새롭게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쓰임새가 다양한 보자기처럼 한씨가 스크랩한 기사도 한씨의 작업에 다양한 방식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는 “내가 읽었던 기사들은 내가 입고 있는 옷이 되기도 하고, 깔고 누운 담요 역할을 해준 적도 있어요. 나 자신으로 체화된 부분도 있고요. 조각보자기가 어떤 경우에도 쓸모를 발휘하듯, 신문 읽기가 나를 단순한 예술가가 아닌 멀티 아티스트로 가꿔준 자양분이 돼준 셈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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