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서 깨달은 영감 “세상 모든 것에 감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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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만번의 감사는 하나의 상징적 의미일 뿐 입니다. 세상 모든 것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겠다는 의지를 다지기 위해 세계 각국의 언어로 백만번의 ‘감사합니다’를 표현하고자 합니다.”

서양화가 김대순씨는 세상 모든 것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작품을 만들어간다고 말한다. [조영회 기자]

미술교사라는 안정된 직장을 버리고 고단한 예술가의 길로 접어든 서양화가가 있어 화제가 되고 있다. 아산고등학교에 재직 중이던 김대순(64)씨는 지난 2004년 돌연 명예퇴직을 신청했다. 술에 의지해 살았던 수많은 날들, 그로 인해 학생들에게 미안했던 마음, 작품 활동과 점점 멀어지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게 된 김대순씨는 스스로 죄를 지으며 살고 있다고 자책하며 모든 것을 버리고 홀연히 교단을 떠났다. 세속적 명예와 권위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작품 활동을 펼치고 있는 그를 주변에서는 기인(奇人)이라고 부른다.

 “젊은 시절 매일 술로 살다시피 했지요. 명예퇴직을 한 후에도 몇 년 동안 술독에 빠져 살다가 급기야 2007년에는 병원 신세를 져야 했어요.”

 그러나 병원에 입원한 것이 그에게는 새로운 변화의 시기를 맞는 계기가 됐다. 모태신앙이었던 김대순씨는 매일같이 자신을 위해 감사의 기도를 올리는 어머니를 이해하려 하지 않았고 어쩌면 그 때문에 더욱 스스로를 학대했을지도 모른다. 병원에 입원해서도 술 생각을 떨쳐내지 못했던 그에게 오랜 지인이 찾아와 ‘평생감사’라는 책을 선물했다. 병원 시계의 무료한 흐름을 달래기 위해 읽기 시작한 ‘평생감사’는 그에게 한줄기 빛으로 다가왔고 그는 병원에서 퇴원한 이후 ‘백만번의 감사합니다’를 실천하겠다는 굳은 마음을 먹었다. 또 이때부터 늘 감사의 기도를 올리던 어머니의 마음도 조금씩 헤아릴 수 있었다.

 “병원에서 퇴원하고 1년 뒤부터 본격적으로 작품을 시작했으니 이제 4년 정도 됐네요. 처음에는 ‘감사합니다’를 쓸 때마다 숫자를 세어가며 작품을 그렸는데 얼마 뒤 의미가 없음을 깨달았어요. 또 시작은 종교적 신념에 의한 것이었지만 지금은 종교 조차도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하나님 감사합니다’로 시작해 지금은 세계 각국, 다양한 민족의 언어로 감사합니다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백만번’이라는 숫자가 상징적이라고는 하지만 대략 100호 사이즈(162×112㎝)의 그림에 빼곡하게 ‘감사합니다’를 적어 1000여 개의 작품을 만들었을 때 가능한 숫자다. 그야말로 김대순씨의 작업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힘든 고난의 시간이 될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 같은 고난 역시 감사하는 마음으로 생명이 다 할 때까지 작품 활동을 이어나간다는 각오를 다지고 있다.

 김대순씨는 “이제는 ‘백만번의 감사합니다’를 의지가 아닌 의무라고 생각한다. 오래전 폐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허송 세월을 보냈지만 앞으로는 불우한 모든 것, 심지어 길가에 핀 이름 모를 꽃에도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갈 것이다. 이순(耳順)이 넘어서야 철이 드는 것 같다”며 “어린 시절부터 그림을 그렸지만 이제서야 그림이 뭔지 알게 됐다. 이 그림을 통해 주변의 수많은 어려운 이웃들에게 희망의 등불을 밝힐 수 있는 보람된 일들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요즘도 매일 하루 3시간 이상은 꼬박 작품활동에 몰두하고 있다는 김대순씨는 대학 시절 ‘13인과 순대’라는 작품으로 국선에 입상한 경력을 가진 실력 있는 서양화가로 알려져 있다. 오랜 방황 끝에 명망 있는 화가로 다시 돌아온 그는 앞으로 예술을 향한 자신의 열정을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쏟아 붓고 싶다고 말한다.

최진섭 기자
사진=조영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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