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티나 수출 막히고 재정 바닥

중앙일보

입력

아르헨티나 경제가 사면초가에 몰려있다. 안팎으로 기댈 만한 것이 거의 없는 실정이다.

국제통화기금(IMF)과 미국에 대규모 구제금융을 요청해놓고 있지만 지원의 전제조건이 되고 있는 과감한 경제개혁에 대해 내부 이견이 심해 성사될 지 불투명하다.

엄청난 규모의 외채가 가장 큰 문제다. 올해 아르헨티나 국내총생산(GDP)은 2천9백억달러로 예상된다. 그러나 국가부채규모가 그 절반에 이른다. 전체 국민이 1년간 생산한 것의 반을 빚 갚는 데 써야 한다는 얘기다.

당장 내년에 만기가 되는 부채만 최소한 1백95억달러인데 정부는 돈이 없다. 국가재정은 바닥이고 무역수지도 적자다.

수출을 해서 돈을 벌려해도 대외여건이 최악이다. 달러 강세가 계속돼 자국 수출품의 대외경쟁력이 뚝 떨어졌다. 91년부터 자국 통화인 페소화를 달러화에 1대1로 고정시켰는데 달러가 강하다보니 수출품 가격이 비싸진 것이다.

그렇다고 고정환율제를 풀어 페소화 평가절하를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평가절하를 하면 인플레 위험이 증가하고 외채상환 부담이 더 커져 경제가 송두리째 무너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설상가상으로 올해는 곡물류 가격도 폭락세여서 주요 수출품인 밀과 콩의 가격이 예년의 60~70% 수준이다.

지난 한달간 월가의 투자자들은 아르헨티나 국채 대부분을 팔아치웠다. 최근 5주간 이나라 국채 수익률은 3%포인트나 상승했다.

이를 부채질이라도 하듯 무디스와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는 각각 아르헨티나의 외화표시 국채 신용등급을 햐향조정해 버렸다.

당연히 올해 경제 성적표는 최악이다. GDP 성장률은 당초 3.7%를 예측했으나 지금 상황으로는 1% 달성도 버거울 지경이다. 주가는 연초 대비 22.7%나 폭락했다. 인접국인 멕시코는 13.9%, 브라질은 13.5% 떨어진 데 그쳤다. 실업률도 주변국의 2배가 넘는 16%다.

정정 불안 및 정부에 대한 신뢰감 상실은 경제난을 가중시키는 최대의 요인이다.

지난 10월초 중도좌익 집권연정의 파트너인 카를로스 차초 알바레스 부통령과 권력 2인자인 국가정보국 페르난도 산티바네스 국장이 뇌물 등 부정에 연루돼 사임하자 국민들의 대정부 비난은 극에 달한 상태다.

페르난도 델라루아 대통령의 인기도는 취임 직후인 1월에는 70.3%에 달했으나 지금은 34.1%로 추락했다. 견디다 못한 정부는 결국 IMF에 2백억달러의 구제금융을 신청했다.

그러나 이미 7년째 아르헨티나 경제를 관리하고 있는 IMF는 단호하다.

먼저 외국인 투자의 걸림돌이 되고 있는 노동법을 개정, 구조조정을 자유롭게 하고 초긴축정책으로 재정적자 문제를 해결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노동법 개정과 관련해서는 노조가 파업을 단행하며 강력 저항하고 있고, 긴축정책에 대해서는 14개 주정부가 주 경제침체 등을 이유로 반대하고 있어 합의를 도출하기 어려운 상태다.

메릴린치의 남미 담당 수석경제분석가인 프랜시스 프레이싱거는 파이낸셜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아르헨티나 경제는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며 "세계적 차원에서 대비책을 강구해야 한다" 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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