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소울 푸드, 할머니표 소고기 수제비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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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5호 33면

집집마다 밀가루 음식을 자주 만들어 먹던 시절이 있었다. 한국전쟁 이후부터 1970년대 말까지의 얘기다. 전쟁이 끝나고 먹을 것이 귀하던 시절 미국의 무상원조로 밀이 우리나라에 들어오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나와 밀: 마크로밀 코리아 주영욱 대표

1960년대부터는 적극적인 분식 장려 정책이 시작됐다. ‘하루 한 끼 분식이 나라경제 돕는다’ 등의 표어 아래 한국부인회 같은 사회단체들에서 일주일에 3회 이상 밀가루 음식을 먹자는 국민 캠페인을 벌이기도 했다. 아예 정부에서 매주 수요일과 토요일을 ‘분식의 날’로 정해 그날은 모든 음식점에서 오전 11시부터 오후 5시까지는 쌀로 만든 음식을 팔지 못하도록 강제하기까지 했다. 넉넉하지 않던 시절이기도 했지만 이런 사회 분위기와 정부 정책의 영향으로 가정에서도 밀가루 음식을 많이들 먹었다.

우리 집에서는 수제비를 자주 만들어 먹었다. 수제비는 맛을 내는 국물에 밀가루 반죽을 그저 뚝뚝 뜯어 넣어 만드는 소박하고 단순한 음식이다. 어릴 적 어머니를 대신해 우리를 키워주셨던 외할머니께서는 이 단순한 음식을 별미로 만들어 주셨다. 국물을 다양하게 만드시기도 하고, 재료를 다양하게 넣기도 했다. 수제비는 가난한 집에서 먹는 음식이라고 꺼리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우리 집에서는 모두가 좋아하고 기다리는 별미였다. 할머니의 정성과 사랑 덕분이었다.

소울 푸드(Soul Food)라고 부르는 음식이 있다. 사람들 자신만이 간직하고 있는 아늑한 고향의 맛, 나아가서 영혼의 위로가 되어주는 음식이다. 얼마 전 읽은 『소울 푸드』라는 제목의 책에서 작가들은 자신만의 음식 얘기를 풀어놓으면서 “당신의 소울 푸드는 무엇이냐”고 묻고 있었다. 그 이름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따뜻하고 위안이 되는 나의 소울 푸드는 바로 할머니께서 만들어 주셨던 수제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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