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달러 내면 온라인 인생 지워드립니다” … 미국선 ‘디지털 장의사’ 성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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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스페인 정부는 지난해 3월 구글에 80여 건의 기사를 삭제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소송을 낸 사람들은 인터넷 검색도구를 통해 자신의 집주소가 검색되는 것에 불만을 품은 가정폭력의 희생자부터 대학 시절 체포됐던 경력이 시간이 흘러도 인터넷에 남아있는 중년 여성까지 다양했다. 그들은 법정 공방 끝에 ‘잊혀질 권리’를 쟁취했다.

  독일에서는 살인죄로 형기를 모두 마치고 나온 시민들이 온라인 백과사전인 위키피디아(Wikipedia)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자신의 이름이 들어간 기사를 삭제해 달라는 것. 독일 법정은 “원고들은 이미 죗값을 치렀으며 범죄자에게도 프라이버시와 혼자 남겨질 권리(a right to be left alone)가 있다”며 원고의 손을 들어주었다.

  ‘잊혀질 권리’를 제도에 반영하기 위한 움직임은 유럽에서 특히 활발하다. 이미 법제화 단계에 들어선 지 오래다. 유럽연합(EU)은 ‘잊혀질 권리’를 법으로 보장하는 정보보호법 개정안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 1월 발표된 개정안에 따르면 소비자가 개인정보 삭제를 요청하면 업체는 완전히 삭제해야 한다. 소비자가 페이스북에 올린 자신의 정보를 구글 등 다른 사이트로 옮기고 싶다면, 데이터를 통째 옮기는 것도 허용해야 한다. ‘데이터 주권’에 대한 보장이다. 업체가 법을 위반할 경우 50만 유로(약 7억5700만원)의 벌금이 부과된다. 기업 연매출의 1%까지 벌금을 낼 수도 있다.

 온라인 업체 라이프인슈어드닷컴(www.lifeensured.com)은 “온라인 인생을 지워 드린다”며 손님을 끈다. 정보의 장례식을 치르는 이른바 ‘디지털 장의’ 업체다. 세상을 떠난 사람들이 생전 인터넷에 남긴 흔적들을 청소하면서 돈을 번다. 300달러(약 34만원)를 내고 가입한 회원이 죽으면 ‘인터넷 장례 절차’에 들어간다. 회원의 사망신고가 접수되면 인터넷 정보를 어떻게 처리할지에 대해 적은 유언을 확인한다. 이어 ‘흔적 지우기’에 들어간다. 페이스북 등에 올려둔 사진을 삭제하는 것은 물론 회원이 다른 사람 페이지에 남긴 댓글까지도 일일이 찾아 지워준다. 생전에 가입해둔 사이트를 통해 데이트 신청이 올 경우엔 ‘저한테 관심을 보여주신 건 감사하지만 전 이미 천사가 되었답니다’라고 자동 응답해 주는 서비스도 있다. 표현의 자유라는 기본권을 중시하는 미국의 문화와 ‘잊혀질 권리’에 대한 시민들의 인권 의식이 찾아낸 일종의 타협책인 셈이다.

JTBC 성화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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