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준 사건 '판박이' MCI코리아 불법대출

중앙일보

입력

'제2의 정현준 게이트인가' .

동방.대신신용금고 불법대출 사건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유사한 사건이 또 터졌다. 자칭 벤처기업인이 신용금고를 인수한 뒤 멋대로 고객돈을 빼다 쓴 것이다.

더구나 감독당국이 해당 금고의 불법행위를 앞서 적발하고도 제때 강력한 제재조치를 취하지 않아 사고를 키우는 데 일조했다는 점도 똑같다.

◇ 대주주의 사(私)금고된 신용금고=1998년 벤처붐을 타고 거액을 번 진승현씨는 에이스캐피털이란 회사를 모태로 MCI코리아라는 벤처기업을 세웠다.

이 회사는 벤처기업을 사들여 사세를 키워가다 지난해 8월 5일 열린금고를 인수했다. 목적은 코스닥 붐을 탄 머니게임에 쏟아부을 자금을 손쉽게 마련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열린금고를 인수한 지 한달 만인 지난해 9월 이뤄진 금감원 검사에서 3백37억원의 불법 출자자 대출(지분 2% 이상인 주주에겐 대출이 안됨)이 적발된 것.

금감원이 이를 문제삼아 대표이사와 감사를 면직시키자 MCI코리아는 불법 대출금을 모두 갚아 영업정지를 모면한 뒤 금감원을 비웃기라도 하듯 바로 2백억원대 출자자 대출을 일으킨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 3월 열린금고 검사에서 다시 출자자 대출 2백50억원이 적발되자 다시 한번 문제의 대출금을 갚고 영업정지를 모면했다.

검사기간 중 출자자 대출금을 갚으면 영업정지를 내릴 수 없는 허점을 악용한 것. 진씨는 이번 검사에서도 이달말까지 출자자 대출금을 모두 갚겠다고 금감원에 제시해 영업정지를 피하려고 시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 석연찮은 처벌=지난해 9월 열린금고 검사를 맡은 사람은 동방금고 불법대출 사건에 연루돼 자살한 장내찬 전 국장이다.

당시 자기자본의 3배 가까운 불법대출이 적발됐으나 대표이사와 감사의 면직조치로 끝낸 것은 지나치게 가벼운 제재였다는 의혹이 일고 있다.

올 3월 검사에선 기관 문책경고 조치가 이뤄지긴 했지만 두차례나 불법대출이 적발된 회사를 영업정지시키지 않은 것은 법적으론 문제가 없을지 모르나 상식적으론 역시 납득하기 어렵다.

지난 4월 한스종금 매각과 관련, MCI코리아가 이미 물의를 일으킨 적이 있는데도 계열사인 열린금고를 11월에 와서야 검사한 것도 실기한 것이란 지적이 많다.

◇ 불법 대출받은 돈 어디로 갔나=현재까지 밝혀진 불법대출은 MCI코리아에 흘러간 3백77억원과 D업체에 동일인 대출한도를 넘겨 대출된 55억원 등 모두 4백32억원. 동방금고 불법대출 사건으로 볼 때 불법대출 규모는 이보다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금감원은 불법대출 사실만 확인했을 뿐 이 돈이 어디로 갔는지는 밝힐 권한이 없다고 말한다. 따라서 이 돈이 동방금고 사건에서 논란이 된 것처럼 정.관계로 흘러갔는지는 검찰이 밝혀내야 할 몫이다.

벤처업계에선 진씨가 정현준 한국디지탈라인 사장 못지않게 정.관계 실력자들과의 친분을 자랑하고 다녔다는 소문이 파다해 로비자금으로 쓰였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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