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 지원기관' 문턱 닳는다

중앙일보

입력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중소기업진흥공단 등 중소기업 지원 단체나 기관들의 대출 창구가 최근 부쩍 붐비고 있다.

동아건설.대우자동차의 부도, 현대건설 자금난 등으로 금융 시장이 얼어 붙으면서 자금력이 달리는 중소기업들이 급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몰리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연말을 앞두고 대기업들이 현금 확보에 나서면서 상대적으로 금융기관을 이용하기가 어려운 중소기업들이 지원기관.단체에 매달리고 있다.

서울 소공동 W시계제조업체인 월 패스 인터내셔날의 K사장은 이달 초 중소기협중앙회의 공제기금 사업처로부터 2천8백만원을 대출 받아 원자재 대금을 지급하고 일부는 하청업체 납품 대금으로 썼다.

이 공제 기금을 대출 받으려면 그 전에 6개월 이상 부금을 내야 한다.

K사장은 "대기업들도 금융기관에서 돈 빌리기 어려운 마당에 중소기업들이 제도 금융권을 이용하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 라며 "오죽하면 계(契)와 비슷한 성격의 부금 대출을 받겠느냐" 고 말했다.

경기도 안양의 통신장비 업체인 중앙데이터시스템은 거래하는 대기업이 대금 결제를 늦추는 바람에 운영 자금의 부족분을 메우느라 부금 대출 5천만원을 받았다.

물탱크 제조업체인 경기도 김포 성일기계공업은 동아건설이 발행한 어음을 갖고 기협중앙회에서 1억6천9백만원을 빌렸고 대우자동차 납품업체인 인천 남동공단 ㈜HST는 대우차 어음을 근거로 1억5천만원을 융자받았다.

기협중앙회 공제기금은 이처럼 부도난 어음을 담보로 돈을 빌리는 1호 대출, 어음 할인을 받는 2호 대출과 단기 대출 성격의 3호 대출 등 세가지가 있다.

1호 대출은 대출금의 10%를 대손준비금 명목으로 미리 뗀 뒤 빌려 준다.

이 대출은 별도의 담보가 없어도 받을 수 있으나 기업신용 등급이 높아야 하고 대출받은 기업은 회사 경영실적과 사주의 개인자산 변동상황 등을 수시로 점검 받아야 한다.

정희영 공제기금사업처 대출부장은 "1호 대출 문의가 예전에는 한달 평균 30여건에 불과했으나 이달 들어 대우차 등 대기업 부도 어음이 쏟아지면서 하루 10여건씩 몰리고 있다" 며 "특히 대구.광주 등 지방 중소기업들의 문의가 크게 느는 추세" 라고 설명했다.

올 상반기만 해도 시중 금리와 별차이가 없어 관심이 뜸했던 중소기업진흥공단 정책자금에 대한 신청도 다시 늘고 있다.

서울 번동에서 홈오토메이션 기기를 만드는 텔다전자는 지난달 중순 중진공의 경영안정자금 2억2천여억원을 받았다.

이 회사 정하완 전무는 "내년 초 금융시장 상황이 어떻게 변할지 몰라 은행 돈보다 빌리기 쉬운 정책자금을 신청했다" 며 "정책자금은 4년여만에 쓰는 것" 이라고 말했다.

중진공의 양해진 경영지원팀 부장은 "중소기업들이 은행 대출을 받기 어려운 탓도 있지만 정책자금의 금리가 최근 낮아진 데다, 연말 연시에 몰릴 자금 수요에 대비하려는 차원에서도 중소기업들의 문의가 늘고 있다" 며 "자금 여유가 있는 일부 우량기업들의 신청은 반려하고 있다" 고 말했다.

중진공의 정책자금 금리는 지난달 연 8%에서 7.5%(수출금융은 연 7.4%에서 6.8%)로 0.5%포인트 내렸다.

중진공에 따르면 중소기업 생산시설 개선에 들어가는 구조개선자금의 경우 지난 7~9월 월평균 6백39억원의 신청이 들어왔지만 금리가 내린 지난달 9백99억원으로 40% 가량 늘었고 이달 들어서도 20일 현재 6백억원 가까이에 이르고 있다.

운전자금 용도의 경영안전 자금도 7~9월 석달 동안 월평균 4백50억원이던 것이 지난달 6백76억원으로 늘었고 이달 20일 현재 4백50여억원에 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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