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제주 더비, 더 뜨거운 응원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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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9일 백호기 고교축구에서 제주 제일고(위)와 오현고 응원단이 보디섹션으로 각 ‘GO’와 ‘必勝’이라는 글씨를 만들고 있다. [제주=김민규 기자]

붉은 호랑이가 눈을 지그시 감았다가 뜬다. 반대편에는 푸른 용이 나타나 입에서 불꽃을 내뿜는다. 만화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장면이 축구장 관중석을 수놓았다.

 지난달 29일 제주종합운동장에서 제42회 백호기 고교축구대회(제주도 내 5개교 참가) 경기가 열렸다. ‘붉은 호랑이’ 오현고와 ‘청룡’ 제주제일고가 맞붙었다. 두 학교는 제주를 대표하는 전통 라이벌이다. 고려대와 연세대의 정기전, 강릉의 농상전(농공고-상고, 현재는 중앙고-제일고)과 어깨를 견주는 대한민국 대표 ‘더비 매치’다. 차가운 봄비가 내렸지만 스탠드를 가득 채운 학생들의 응원전은 뜨거웠다. 오현고는 브라스 밴드까지 동원했고, 제일고는 절도 있는 기수단으로 흥을 돋웠다. 응원전의 백미는 학생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펼치는 보디섹션이었다.

  오현고 학생 700여 명은 노란색과 검은색, 붉은색으로 구성된 전통 응원복으로 다양한 문구를 그렸다. 김동형(18) 학생회장의 구호에 맞춰 재빨리 옷을 갈아입었다. 오현(五賢)을 한자로 썼다가 이내 필승(必勝)으로 바꿨다. 곧바로 호랑이가 나타났다. 응원가를 부르는 동안 그림은 계속 바뀌었다. 강재길(48) 오현고 학생부장은 “1982년 백광익(60·현 오현중 교장) 선생님이 주도해 오현고에서 카드섹션 응원이 시작됐다. 시간이 지나며 더 정교한 표현이 가능한 보디섹션으로 변했다”고 설명했다. 강 부장은 이어 “현재는 제주도에 축구부가 있는 학교 모두 보디섹션을 한다. 일본의 신문기자들도 ‘도대체 얼마나 연습을 하기에 이런 작품을 만들어내느냐’고 감탄한다”고 귀띔했다.

 넓은 북측 스탠드를 차지한 제일고는 전교생 1600여 명이 모두 응원에 참가했다. 제일고는 검푸른 재킷과 하얀 와이셔츠 등 교복을 활용한 응원을 펼쳤다. 이호형(18) 학생회장이 “일고! 재킷 벗습니다” 등을 큰 소리로 외치며 응원을 지휘했다. ‘Victory(승리)’와 ‘Go(가자)’ 등 영어문구가 많았다. 오창환(48) 제일고 교사는 “학생들은 일주일 동안 집중적으로 연습한다. 학생회가 중심이 되는데 요즘은 컴퓨터 시뮬레이션까지 이용하더라”며 대견스러워했다. 그는 “학생들은 전통과 애교심을 몸으로 느끼며, 공부도 더 열심히 한다. 전교생이 함께한 추억이 있어서 왕따도 없다”고 소개했다. 이날 경기는 제일고가 승부차기 끝에 4-1로 이겼다.

 이호형 학생회장은 연일 이어진 응원 준비에 몸살로 병원을 찾았다. 그는 “입시 공부로 바쁜 중에도 전교생이 하나가 됐다. 자부심과 보람 덕분에 아픈 것을 모두 잊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응원을 지켜본 프로축구 제주 유나이티드 박경훈 감독은 “제주도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응원이다. 프로축구장에서도 이런 응원이 있었으면 좋겠다”며 부러워했다.

제주=김민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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