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민심 끌어들이는 중국형 통일전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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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정용환
베이징 특파원

나선형 계단을 돌아 탑의 꼭대기로 올라가는 느낌이다. 양안(兩岸·중국과 대만) 관계를 풀어가는 중국의 솜씨를 보면서 드는 생각이다. 중국의 차기 총리로 유력한 리커창(李克强) 상무부총리와 다음 달 대만의 부총통에 취임하는 우둔이(吳敦義) 전 행정원장. 지난 1일 하이난다오(海南島)의 보아오(博鰲) 포럼에서 이들 양안의 미래권력 2인자들이 만났다. 2002년 제1회 포럼에서 민간 부문의 접촉으로 시작된 양안의 교류가 이제 정부 최고위 각료 차원으로 격상된 것이다.

 당국 간 만남 없는 통일 논의는 공허하다. 둘의 만남으로 양안 관계는 한 걸음 더 전진했다. 우 부총통은 리 부총리에 대해 “만나 보니 듣던 바 명성보다 훨씬 낫더라”고 치켜세웠다. 불과 4년 전만 해도 양안의 당국 간 교류와 접촉은 먼 나라 얘기였던 것에 비하면 큰 변화다.

 이 같은 변화는 우연이 아니다. 중국은 ‘하나의 중국’ 원칙에 동의하는 국민당이 2008년 집권하자 치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해 5월 국민당 마잉주(馬英九) 정권이 들어서자 1년이 되기도 전에 양안의 하늘길을 열었다. 이어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 달라이 라마의 대만 방문에 발끈하면서도 중국은 직항 노선을 풀었다. 그러자 타이베이(臺北)에서 상하이(上海)를 가려면 2시간 남짓한 직선 코스를 두고 멀리 홍콩까지 돌아가야 했던 대만의 상공인들이 한결 편리해졌다. ‘양안 자유무역협정(FTA)’으로 불리는 경제협력기본협정(ECFA)도 대만인들의 마음을 샀다. 2010년 체결한 ECFA는 대만에 유리한 불평등 협정이다. 불과 1년 만에 328억 달러(2009년 기준) 수준이던 대만의 대중 흑자액이 860억 달러로 치솟았다.

 이처럼 공들인 결과는 올해 선거에서 확인됐다. 박빙의 대결이 펼쳐지자 마잉주 총통의 재선에 투표하려고 대륙에 있던 기업인 30만 명이 귀국길에 올랐다. 개표 결과 80만 표 차이였음을 감안하면 이들 30만 기업인과 가족·친지들의 몰표가 마잉주의 재선에 결정적 기여를 했다 해도 과언은 아니다.

 보여주기용 정상회담에 집착하고, 성사를 위해 급행료를 냈던 남북 관계를 떠올리면 중국의 노회한 만만디 전략이 더욱 돋보인다. 정권에 뒷돈을 대는 게 아니라 대만인들의 주머니를 불려 민심이 자연스럽게 중국으로 흐르도록 이끈 것이다. 우리의 남북 관계는 중국의 양안 관계와는 다르지만 우리 정부와 정치권도 장기적이고 세밀한, 동시에 단계적 접근을 하는 대북 정책을 수립해 조심스럽게 관리할 필요가 있다.

<보아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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