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은행 총재 이례적 3파전 … 유력 후보 김용, 서울 경청투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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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오콘조이웨알라(左), 오캄포(右)

세계은행 총재 후보인 김용(53) 다트머스대 총장이 1일 한국에 왔다. 김 총장은 지난달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추천을 받은 뒤 에티오피아·브라질·멕시코·중국·일본·한국·인도 등 7개국 ‘경청투어(Listening Tour)’를 진행하고 있다.

 일본 나리타 공항발 대한항공 704편으로 인천공항에 도착한 그는 정장 위에 검정 외투 차림이었다. 지난달 백악관에서 오바마 대통령으로부터 후보 지명을 받을 때 맸던 초록색 넥타이를 똑같이 매고 있었다. 대기하던 취재진과 마주친 김 총장은 일부 외신의 비판에 대한 질문엔 아무런 답을 하지 않았다. 이후 질문이 계속되자 영어 악센트 없는 정확한 우리말로 “나와주셔서 고맙습니다. 나중에 말씀드리겠습니다”고만 얘기한 뒤 출국장을 빠져나갔다.

 김 총장은 2일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과 아침 식사를 하며 세계은행의 정책 방향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지지를 당부할 예정이다. 오후엔 청와대에서 이명박 대통령을 만날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모든 일정은 미국의 요구로 시간과 장소 모두 공개되지 않고 있다.

 세계은행 차기 총재는 오는 16일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블룸버그 통신은 “세계은행이 애초 20일께 총재를 선출할 예정이었지만 나흘 정도 앞당기기로 했다”고 1일 보도했다.

 김용 총장이 가장 유력한 후보라는 데 이견은 없다. ‘세계은행 총재는 미국 몫,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는 유럽 몫’이란 불문율이 이번에도 깨질 것 같지 않아서다. 그런데 올해 분위기는 예전과 좀 다르다. 아프리카 나이지리아의 여성 재무장관인 응고지 오콘조이웨알라(58)의 도전이 만만찮다. 그는 세계은행 부총재를 지내기도 했다. 게다가 남미 콜롬비아 재무장관을 지낸 호세 안토니오 오캄포(59) 미 컬럼비아대 교수도 총재 선거전에 뛰어들었다.

 세계은행 68년 역사상 후보 3인이 나선 것은 이례적이다. 미국이 지명하고 유럽 후원을 받은 후보가 곧 총재가 되는 구조였다. 여기에 감히 도전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오콘조이웨알라와 오캄포는 도전장을 내밀었을 뿐만 아니라 한 걸음 더 내디디고 있다. 두 사람은 서로 표현은 조금씩 다르지만 ‘미국이 세계은행 총재 자리를 독식해온 관행이 옳지 않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세계은행 투표권이 미국(16%)에 이어 2위(9%)인 일본은 김 총장 지지를 공식 선언했다. 이날 아즈미 준(安住淳) 재무상은 도쿄에서 “일본은 김 총장을 지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 정부 고위 관계자는 “아시아권에서도 김 총장을 지지하는 분위기가 많다 ”며 “일부 외신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변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의 다른 관계자는 “3명의 후보가 나섰지만 이제까지 세계은행이 표결로 총재를 선출한 적은 없다”며 “동의 를 구하는 과정을 통해 컨센서스로 총재를 선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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