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제 운명은 IT 인력확보가 좌우

중앙일보

입력

21세기에 기업이나 국가가 성공하는데에는 고급 정보통신 인력을 얼마나 많이 확보하느냐가 관건이다. 그런데 여기에는 해당 인력에 보수를 많이 주고 교육기회를 많이 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이민자에 관대한 사회적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우선적으로 필요하다. 특히 아시아에서는 이 같은 정책이 시급한 데, 왜냐 하면 대부분의 이 지역 국가들이 당장 수년내로 내국인만으로는 이 분야의 인력 수요를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홍콩의 HSBC은행은 얼마 전부터 중요한 정보통신 분야의 인재들을 다른 회사에 빼앗기기 시작했다. 연봉을 올려주고 스톡 옵션을 제공하고 종합적인 교육을 받게 해 준다고 약속해도 소용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이 은행은 어쩔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이라고 인정하고 사람을 지키는 전략 대신에 필요한 인재를 공격적으로 끌어 모으는 전략을 수립했다.

은행 뿐만 아니다. 홍콩·서울·싱가포르의 주요 신문사들도 경쟁적으로 정보통신 전문가들을 끌어 모으고 있다. 철강회사에서 식료품 체인점까지 정보통신 분야에 대한 인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대가 이미 온 것이다.

이른바 ‘신경제’라고 일컬어지는 이 새로운 시대에는 기계의 성능이 생산성을 좌우하던 이전 시대와 달리 새로운 정보통신 기술을 창조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사람을 얼마나 보유하고 있느냐가 기업과 국가의 흥망을 좌우하게 된다. 문제는 현재 이러한 사람이 절대적으로 부족한데 비단 아시아 국가만 그런 게 아니라 서구도 마찬가지라는 점이다.

미국 의회는 최근 정보통신 기술자의 이민을 대폭 수용하기로 결의했다. 향후 3년 동안 총 60만 명 규모로 이 중 24만 명 가량을 인도에서 충당할 예정이다. 아시아에선 이 사안의 심각성을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지만 이는 새로운 경제 시대의 승리자가 되기 위한 싸움에서 미국이 선제 공격을 한 것이다.

좋은 정보통신 인력은 당장 기술적인 지식만 많이 가진 사람이 아니라 정보의 생산과 유통에 대한 종합적인 인식까지 갖춰야 하기 때문에 예전의 공장 노동자나 기업체 관리직 사원을 양성하는 것보다 시간이 오래 걸린다. 단기간 교육으로 인재를 만들 수 없기 때문에 해외에서 잘 교육된 인재를 끌어 오는 것이 필수적이다.

아시아 국가에서 정보통신 인력이 부족한 것은 미래의 일이 아니다. 말레이시아는 당장 올해 말까지 1만5천 명의 추가 인력이 필요하다. 한국은 2002년 말에 5만 명, 홍콩은 2005년 말에 1만7천 명, 태국은 향후 15년간 80만 명이 필요할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아시아 국가들은 전통적으로 해외 인력 수입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이 같은 필요성은 인정하면서도 주춤거려 왔다.

하지만 이미 몇몇 나라들은 생각을 바꾸고 있다. 특히 싱가포르가 대표적이다. 이 나라는 최근 정보통신개발국(IDA)이라는 정부 기구를 만들어 연간 5천 명의 해외 기술자를 유치하기로 계획을 세웠다. 또 이웃 말레이시아에서 우수 인력들을 속속 빼오고 있기도 하다. 이에 화교 세력의 학대를 두려워해 외국인의 이민을 극도로 억제하고 있는 말레이시아도 최근 기업이 3백 명까지 해외 전문인력을 고용하는 것을 허용하는 정책을 도입했다. 태국은 세계은행의 권고에 따라 동구권 정보통신 인력이 비자 없이 체류할 수 있도록 정책을 바꿨다. 아시아 국가들이 인도·중국·동구권 국가의 고급 인력을 활용하는 방안을 서서히 모색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단순히 이민이나 해외 인력 수입 요건을 완화한다고 해서 해결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앞으로 2년 뒤에 2백만 명의 새로운 인력을 필요로 하게 될 미국과 유럽에서 좋은 인력들을 먼저 가져가게 된다는 것이다.

인도나 동구권 기술자들은 아시아 국가에서 돈을 더 준다 해도 미국으로 가겠다고 서슴없이 밝히고 있다. 자유스럽고 관용적인 사회로 가겠다는 것이다. 특히 웹 디자이너와 프로그램 개발 전문가 등 자유분방한 성격을 가진 이들은 더욱 그렇다. 싱가포르나 홍콩은 이미 해외 인력들이 기회만 생기면 미국이나 유럽으로 떠나는 바람에 인력 수입으로 간단히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경험했다.

그래서 아시아 국가들에는 이민자나 외국인 인력들이 편안하고 자유롭게 느낄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한편 국내 인력을 지켜야 하는 2중의 전략을 구사할 수밖에 없다. 지키는 것은 물론 억지로 안된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이 고급 인력을 많이 만들어 내는 방법밖에 해결책이 없다.

한 가지 해결책은 중등교육 단계에서부터 직무 수행에 필요한 실용영어와 포괄적인 실용 지식을 효과적으로 교육해 ‘신경제’에 맞는 인재가 많이 생겨나도록 하는 것이다. 또 정부가 고급 정보통신 인력의 상당수가 해외로 빠져 나갈 것을 참작해 분야별 인력 수급 계획을 수립하는 것도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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