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탐방] '다승왕을 노린다' 구자운 (1)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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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프로야구에서 두산베어스는 많은 수확을 거뒀다.

'한 지붕 두 가족' LG를 플레이오프에서 꺾어 자존심을 세웠고, 한국시리즈에선 3연패 후 기적 같은 3연승으로 팬들을 관심을 야구장에 집결시켰다. 정작 우승기를 현대에게 빼앗겼지만 구단과 팬이 하나가 되는 엄청난 소득을 올린 것이다.

스토브리그로 접어든 지금 내년 우승을 향한 힘찬 시동을 준비하는 8개 구단의 공통된 걱정은 마운드 쪽에 쏠려있다. 두산 역시 마찬가지지만 타 팀에 비해 훨씬 느긋하다. 바로 구자운이 있기 때문이다.

구자운은 서울고등학교 에이스로 활약하던 1998년 백차승(당시 부산고)과 더불어 빅2로 불렸던 대어다. 185㎝ 87㎏의 당당한 체격에 145㎞의 빠른 볼을 가진 우완정통파 투수라면 즉시 전력감은 물론, 장차 팀을 이끌 주력선수의 가능성을 가진 때문이다.

스카우트들의 관심 속에 신인드래프트도 하기 전 구자운이 OB와 입단에 합의하자 전문가들은 앞으로 OB(99시즌부터 두산으로 개명)의 전력이 훨씬 강화될 것이라도 한결같이 말했다.

라이벌 격인 백차승이 미국으로 날아가(현 시애틀 매리너스 산하 싱글A팀인 위스콘신 팀버 래틀러에서 활약)버려 상대적 가치가 더 커진 구에 대한 찬사는 이렇게 모아졌고 2년만에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하지만 구자운의 프로생활 2년은 절반의 공백을 동반한 것이기에 순탄한 것만은 아니었다. 99년 주목받는 신인으로 개막엔트리에 포함되었지만 팔꿈치 이상으로 5일만에 2군으로 내려갔다. 쓰꾸미 전지훈련의 무리로 인한 팔꿈치 이상으로 여겼지만 재활기간은 의외로 길었다.

마침내 3개월여가 지난 7월, 다시 1군에 복귀했지만 조심스럽게 컨디션을 점검하며 출장할 수밖에 없었다. 9월 첫 세이브에 이어 10월 4일 현대전에서 첫 승리를 신고해 본격적인 가동을 하는가 싶었지만 팔꿈치는 완전치 않았다.

플레이오프에서 한화에 4전전패의 수모를 당한 날 대전에서 김인식 감독은 무리해서 박명환과 구자운을 투입할 수 있었지만 어린 선수들의 치명적 부상을 염려해 참았다는 말을 했다. 그것은 구자운의 상태가 우려할만한 상황이라는 것의 반증이었다.

마침내 12월 일이 터졌다. 문제의 팔꿈치에 선수생명을 위협할만한 치명적인 병이 도사리고 있었던 것.

팀의 주치의인 주의탁 박사는 '구의 우측 팔꿈치에 박리성 골연골염이 발생, 뼈 일부분이 잠식당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구자운의 야구인생이 송두리째 흔들릴 수 있는 위기에 봉착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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