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이어도에 부는 중국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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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이석용
한남대 교수

류츠구이 중국 해양국장은 지난 3일 ‘이어도가 중국의 해양관할 구역에 있으며 정기적인 순찰 범위에 속한다’고 밝혔다. 이에 우리나라 외교통상부에서는 중국대사를 불러 중국이 공식적으로 이어도에 대해 관할권 주장을 해도 이를 수용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이어도 문제가 한·중 간 관계에 큰 부담이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갖게 한다.

 제주도 전설로 전해져 오던 이어도는 1900년 영국 선박 소코트라호에 의해 실재가 확인됐다. 이어도는 우리나라 최남단 마라도로부터 149㎞, 중국의 동도로부터 247㎞ 떨어져 있는 수중 암초일 뿐이다. 국제법상 섬이 아니다. 따라서 주변에 영해, 대륙붕, EEZ를 설치할 수도 없다.

 과거 국가들은 한 뼘이라도 영토를 넓히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했다. 그러나 당시 바다에는 그로티우스(Grotius)의 ‘해양자유론’에 근거한 패러다임이 자리 잡고 있어서 해수면의 경우 비교적 평온을 유지했다. 그 후 지구상에 새로운 영토의 취득이 불가능해진 상황에서 해양이 부족한 자원의 대체공급원으로 주목을 받게 되었고, 국가들은 해양수역 확보 경쟁에 나서게 되었다. 옥스먼(Oxman) 교수의 말대로 육지영토에 이어 해양영토가 국가들의 ‘영토적 유혹’의 대상으로 등장한 것이다.

 연안국들의 해양수역 확대 시도는 해양법 협약의 등장과 함께 본격화됐다. 해양수역 확대는 주로 배타적 경제수역(EEZ)과 대륙붕을 통해 이뤄진다. 오늘날 세계 도처에서 발생하고 있는 도서영유권 분쟁도 대부분은 섬 자체보다는 주변의 해양수역에 대한 국가 간 경쟁에서 비롯된 것이다.

 한·중 양국의 당국자들은 공히 이어도가 영토나 도서영유권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는 데 동의하고 있다. 2006년 12월 한·중 해양경계 획정회담에서 양국은 “이어도는 수중 암초이므로 양국 간에 영토분쟁은 없다”는 데 뜻을 같이했다. 우리나라는 이어도와 그곳에 건설된 해양과학기지가 섬의 지위를 갖는다고 공식적으로 주장한 적이 없으며, 중국도 최근 성명에서 쑤옌자오(蘇岩礁·이어도의 중국 명칭)는 수중 암초이므로 영토분쟁의 대상이 아니라고 했다. 결국 이어도 문제는 해양경계 획정의 결과에 따라 귀속이 결정될 것이다. 물론 황해와 동중국해의 복잡한 상황을 감안할 때 양국이 해양경계선에 관한 합의에 도달하는 것은 쉽지 않다. 양국은 해양경계 획정의 원칙에서부터 이견을 보이고 있다. 우리는 양국 간 해양경계선은 중간선을 따라야 한다고 하지만, 중국은 형평의 원칙이란 이름 아래 자연적 연장이 중시돼야 한다는 생각이다. 양국 간 중첩 수역에는 대륙붕의 단절은 없으므로 중간선을 적용하는 것이 온당하고 국제 관행에도 부합하지만 상대방이 있는 문제인 만큼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

 중국 국가해양국이 이어도에 대한 관할권을 주장했지만 그것이 이어도에 대한 영토적 주장을 의미하는지는 불분명하다. 최근 일련의 사태 가운데에서도 중국은 이어도에 대한 관할권을 주장하면서도 이 문제는 결국 양국 간 경계 획정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는 입장을 내놓고 있다. 반면에 우리 정부는 이어도 주변 수역이 경계 미획정 상태에 있기는 하지만 어떤 경우에도 우리의 EEZ에 속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오늘날 해양경계 획정은 대개 중간선을 긋고 관련 상황에 따라 그 선을 조정해 가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그럴 경우 이어도는 틀림없이 우리나라의 EEZ에 속하게 될 것이다.

 중국은 2011년 여름 관공선을 이어도 해역에 파견해 영유권 주장 시위를 했고, 이번에는 해양국장이 ‘이어도가 중국의 해양관할구역’이라고 밝혔다. 우리로서는 의연하게 대처해야 한다. 해양경계 획정이 마무리되는 순간까지 이어도 문제에 관심을 소홀히 해선 안 된다.

이석용 한남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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