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프로야구결산] ③시급한 선수권익 보호

중앙일보

입력

지난 4월18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LG와의 경기에서 쓰러졌던 임수혁(31.전 롯데)은 아직 혼수상태에 빠져 있다.

당시 임수혁은 2루 베이스에서 갑자기 심장경색을 일으킨 뒤 쓰러져 병원으로 긴급 이송됐지만 그날 이후 눈을 뜨지 못하고 있다.

그런 상태에서 임수혁은 최근 소속 구단이던 롯데로부터 방출 통보를 받았다.

롯데는 투병중인 임수혁과의 내년시즌 재계약을 포기하겠다는 뜻을 가족에게 전달한 것이다.

두 아이의 아빠이자 프로 경력 7년차인 직업야구선수 임수혁의 올시즌 연봉은 5천200만원이었다.

내년 부터 이 돈을 받을 수 없게 된 가족들은 생활고에 시달리게 됐다.

지난 7개월동안 들어간 임수혁의 병원비는 줄잡아 5천여만원.

물론 롯데는 경기 도중 발생한 사고에 책임을 지고 병원비를 전액 지급했고 앞으로도 각종 비용을 지급할 예정이다.

하지만 가족의 생계를 책임졌던 임수혁이 불의의 사고로 인해 보상받을 수 있는 돈은 그야말로 프로라는 이름이 무색하다.

프로선수가 산업근로자로 인정되지 않는 상황에서 임수혁은 한국야구위원회(KBO)의 규약에 명시된 상해보험금 2천500만원과 롯데로부터 약간의 위로금을 받을 수 있을 뿐이다.

그런데 상해 보험금 2천500만원이란 지난 82년 프로야구 출범 당시 정해진 규정이다.

18년이란 세월이 흘렀는데도 부상 위험이 높은 프로선수들의 상해보험금 액수는 답보상태에 머물러 있는 셈이다.

이처럼 오랜 기간 선수들의 권익이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고 있는 것은 프로야구 행정이 구단의 입장에서 일방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한국프로야구의 최고의사결정기구인 KBO 이사회는 8개 구단 사장단의 모임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선수들의 권익 향상 문제는 끼어들 여지가 없다.

임수혁의 경우 말고도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 해 말썽 많았던 자유계약선수제도(FA)다.

프로야구 선수의 신분을 놓고 '현대판 노비문서'라는 비난이 대두되자 이사회는 99년 초 입단 이후 10년이 경과하는 선수는 자유롭게 이적할 수 있는 FA제를 서둘러 만들었으나 시행도 하기 전에 구단측의 편의를 위해 3차례나 개악했다.

여기에 분노한 선수들은 지난 겨울 프로야구선수협의회를 출범시켜 자신들의 권익을 스스로 보호하겠다고 나섰다.

시민단체와 일부 국회의원까지 가세해 사회적 파문을 일으켰던 선수협의회는 문화관광부가 중재에 나선 끝에 어렵사리 존재 가치를 인정받게 됐다.

그러나 선수협이 기능을 제대로 발휘하기 위해선 아직도 주변 여건이 미약하다.

선수협은 선수대표와 구단 대표, 공익대표가 한 자리에 모여 자신들의 권익을 신장시킬 수 있는 '제도개선위원회'라는 공식 채널을 만드는데 성공했지만 아무런 강제력을 발휘할 수 없는 자문기구에 그치고 있다.

제도개선위가 자문기구에 불과하고 다루는 안건들이 미미하다 보니 이사회의 결정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있다.

때문에 선수들이 자신들의 권익을 확실하게 보장받기 위해선 제도개선위를 통해 좀더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정책을 제시해 여론의 지지를 받는 것이 시급한 과제다. (서울=연합뉴스) 천병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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