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프로야구결산] ①부익부 빈익빈, 전력 불균형 심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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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천년 프로야구에서 가장 두드러진 현상은 '부자구단'과 '가난한 구단'의 전력 차이가 급격히 벌어진 사실이다.

돈많은 구단은 막강한 재력을 앞세워 높은 연봉과 최첨단 훈련 시설 등으로 우수한 기량을 가진 선수들을 마구잡이 끌어들였고 재력이 떨어지는 구단은 있던 선수도 국내 다른 팀이나 해외에 뺏기는 현상이 더욱 심해졌다.

'어차피 돈이 승부하는 프로세계'라지만 아직 선수 저변이 엷어 뿌리를 채 내리지 못한 한국 프로야구에서 이런 부익부 빈익빈 현상은 자칫 프로야구 전체를 괴사시킬 수도 있다는 우려를 사고 있다.

올해 프로야구에서 재력을 앞세워 급격한 전력 향상에 나선 대표적 사례는 삼성.

한국경제를 강타했던 IMF 한파에도 별다른 타격을 입지 않은 삼성그룹의 돈줄을 바탕으로 삼성이 올해 쓴 스카우트 비용은 줄잡아 50억원을 웃돌 것이라는 관측이다.

작년 이맘때 자유계약선수(FA)로 풀려난 김동수, 이강철을 잡았고 메이저리그 타격왕 출신 프랑코를 영입했다.

삼성은 또 작년 한화의 한국시리즈 우승 일등 공신인 계형철코치를 데려온 데이어 시즌 성적이 신통치 않자 파격적인 대우로 '우승 제조기' 김응용감독마저 거액을 들여 사왔다.

삼성과 재계 라이벌인 현대는 삼성보다 한발 앞서 '선수 쇼핑'을 마쳐 올 시즌을 대비한 마구잡이 스카우트는 눈에 띄지 않았지만 정민태에게 3억1천만원의 연봉을 주는 등 5명의 억대 연봉 선수를 탄생시키는 등 '돈의 힘'을 자랑하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삼성, 현대에는 미치지 못하나 구단 사정이 비교적 넉넉한 LG도 '부자 구단'으로서의 면모를 어느정도 과시했다.

양준혁을 트레이드해온데다 신인 경헌호에게 3억8천만원의 계약금을 안겨준 LG는 기존 선수들의 연봉 인상에도 인색하지 않았다.

이에 비해 재력이 떨어지는 팀들은 우수 선수 확보는 커녕 데리고 있던 선수마저 뺏기는 경우가 속출했다.

올해 팀 해체 뒤 선수 일괄 양도라는 비운을 맞은 쌍방울은 '가난한 구단의 설움'을 톡톡히 맛봤다.

이미 김기태, 박경완, 김현욱 등 '돈될만한 선수'는 모두 내주고 올해 입단할 예정이었던 신인 마일영의 지명권마저 3억원을 받고 현대에 넘겼던 쌍방울은 구단 운영비조차 없어 만년 하위권을 맴돌다 구단이 해체되는 운명을 맞이했다.

한국시리즈 9회 우승의 금자탑을 세운 전통의 명문 해태도 '돈의 힘' 앞에서는 무력했다.

곶감 빼먹듯 선수들을 팔아 연명하던 해태는 이제 아무도 환호하는 팬이 없는 초라한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다.

삼성, 현대, LG 등 재계 빅3에 비해 재력이 떨어지는 두산, 롯데, 한화, SK 등 중위권 구단 역시 올해까지는 버텼지만 갈수록 전력차가 벌어지는 것을 감수할 수 밖에 없다.

미국과 일본에서도 부자 구단들의 '선수 싹쓸이'가 걸핏하면 여론의 비난을 받곤 하지만 전세계를 상대로 선수를 수급하는데다 시장도 넓은 이들과는 국내 구단의 처지가 다르다는 점이 고민이다.

중위권 구단 관계자는 "이런 추세가 5년만 지속되면 포스트시즌은 부자 구단끼리의 잔치로 끝날 것"이라고 걱정했다. (서울=연합뉴스) 권 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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