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를 암살하라 … 빈 라덴, 생전에 지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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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테러단체 알카에다의 지도자인 오사마 빈 라덴이 지난해 5월 미군의 공격으로 사망하기 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을 암살하라는 지령을 부하들에게 내렸던 것으로 드러났다.

 워싱턴 포스트는 파키스탄의 수도 이슬라마바드 북서부 아보타바드에 위치한 빈 라덴의 은신처에서 발견돼 최근 기밀이 해제된 문서들을 입수했다면서 17일(현지시간) 빈 라덴의 오바마 암살계획을 보도했다. 미 고위 당국자는 미군이 빈 라덴을 공격하던 날 밤 그의 은신처에서 수천 개의 컴퓨터 파일과 비밀 서류들을 확보했으며, 오바마 암살계획은 이 자료들을 분석하는 과정에서 밝혀졌다고 전했다.

 흥미로운 건 빈 라덴이 오바마 대통령을 암살하기로 결심한 이유다. 빈 라덴은 암살을 지시한 문서에서 “‘이교도의 우두머리’인 오바마를 죽이면 조 바이든 부통령이 대통령직을 승계하는데 바이든은 ‘준비가 전혀 안 된’ 인물이기 때문에 미국이 극심한 혼란에 빠질 것”이라고 적었다.

 하지만 빈 라덴으로선 오바마를 암살할 준비가 전혀 안 돼 있었다. 암살 방법으로 빈 라덴이 선택한 건 오바마 대통령의 전용기인 에어포스 원 공격이었다. 미 당국자는 “당시 알카에다로선 에어포스 원을 무엇으로 어떻게 공격할지 수단, 그리고 조직·역량이 부족했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암살 지령은 계속 유효했다”고 말했다.

 특히 빈 라덴은 암살작전을 자신의 후계자 중 한 명으로 거론되던 파키스탄 무장단체 지도자 일리아스 카슈미리에게 맡겼다. 카슈미리는 알카에다에 대한 미군의 무인기(드론·Drone) 공격으로 피해가 커지자 2009년 8월 무인기 제조회사인 록히드 마틴의 최고경영자 로버트 스티븐스를 암살하려는 계획을 세웠던 인물이다. 하지만 카슈미리는 빈 라덴이 사망한 지 한 달 뒤 미국의 무인기 공격으로 숨졌다. 암살 계획도 수포로 돌아간 셈이다.

 빈 라덴은 오바마 대통령 외에 당시 아프간 주둔 미군사령관이던 데이비드 퍼트레이어스 현 중앙정보국(CIA) 국장도 암살 대상에 포함시켰다. 당시 퍼트레이어스는 아프간에서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가 주도하는 다국적군의 지휘를 맡고 있었다. 빈 라덴은 퍼트레이어스를 “현 시점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이라고 평가했으며, 그를 제거할 경우 미군이 주도하는 아프간전의 전체 전략에도 상당한 차질이 빚어질 것이라고 판단했다. 퍼트레이어스는 빈 라덴이 사망한 뒤 군에서 예편해 지난해 CIA 국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미 고위 당국자는 이번에 기밀이 해제된 문서들의 아랍어 원본과 번역본들이 몇 달 뒤 일반에게 공개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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