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바로 보자] 국정관리 문제는 뭔가

중앙일보

입력

"국정 위기엔 그 자체의 특별한 다이내믹스(역동성)가 있다. "

노태우정권(통일원장관).김영삼정권(총리).김대중정권(주미대사)에 참여했던 이홍구(李洪九)씨는 "경제지표가 아무리 좋다 해도 시장에서 '이거 안되겠다' 는 생각이 지배적이면 별안간 위기상황이 조성된다" 고 말했다(31일 고려대의 대통령학 특강). 위기는 별다른 예고없이 엄습해온다는 것이다.

그는 YS정권 임기 후반에 찾아온 국정 위기에 대해 "국가적 개혁프로그램을 끝까지 밀고갈 정치적 힘이 모자랐다" 고 설명했다. 전망이 불투명한 개혁을 시장이 계속 따라주지 않았다는 얘기다.

청와대에서 근무하다 최근 창업한 전직관료는 "개혁 피로감은 국민이 개혁의 효과를 확신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 이라며 "이 문제를 생략하고 일방통행식 개혁을 추진하다간 정권 자체가 위기에 빠질 수 있다" 고 지적했다.

김영삼정권 시절인 1996년 말 노동법 개정 실패가 좋은 사례다. '세계적 기준' 에 따른 노동시장의 개혁취지는 나무랄 데가 없었다.

그러나 YS는 여론과 야당을 끈질기게 설득하는 대신 국회에서의 새벽 날치기를 선택했다. 방법의 잘못이 내용의 옳음을 뒤덮어 버렸다.

여론의 역풍을 헤쳐나갈 도덕적 명분과 정치적 힘을 YS는 잃었다. 청와대 참모들은 사분오열됐고, 이에 따라 집권세력 내부의 균열속도가 빨라졌다.

DJ정권에서 국민의 약 남용 습관을 바꿔 건강사회를 만들겠다는 야심찬 사회개혁인 의약분업은 개혁 불신풍조를 낳았다.

'개혁을 내세우면 여론이 밀어줄 것' 이라는 '개혁 과신(過信)' 은 국민을 설득하는 과정의 중요성을 잊게 만든다(柳錫春 연세대교수.사회학).

무엇보다 '개혁의 과잉과 과제 나열' 은 집권 후반기에 개혁전선을 헝클어뜨리는 요인으로 꼽힌다.

고려대 함성득(咸成得.대통령학)교수는 "DJ정권의 개혁에도 백화점식.모양 갖추기식 개혁의 문제점이 드러난다" 고 분석했다.

그 결과 "문어발식 재벌을 개혁한다면서 '문어발식 개혁' 을 하고 있다" 는 게 咸교수의 진단이다. 문어발식 개혁은 개혁의 집중력과 효율성을 떨어뜨린다.

현 정권이 설정한 4대 부문(금융.기업.노동.공공)의 12대 개혁과제는 개혁 전선의 폭넓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공공부문 쪽만 해도 지난번 감사원 특감에서 드러났듯 여전히 개혁의 열정이 제대로 스며들지 않고 있다.

"개혁이 모든 이해집단을 만족시킬 수 없다는 원칙과 과거의 경험에 현 정권이 충실하지 않다" (연세대 柳교수)는 지적도 나온다. 6공 청와대 경제수석 출신의 문희갑(文熹甲)대구시장은 "모든 대통령이 개혁의 성공을 원하지만 그에 따르는 정치적 부담은 감당하기가 쉽지 않다" 고 지적했다. 이해집단의 눈치를 보게 마련이고 그러면 개혁은 흔들린다는 것이다.

文시장은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는 임기 마지막날까지 영국병의 근원인 상습적 노조파업과 싸웠다.

탄광노조와 수개월간 대치할 때는 여론의 엄청난 비난을 감수하며 외국에서 석탄을 수입해 이를 무력화했다" 고 강조했다.

개혁 혼선의 이유를 정권 전체의 팀플레이 부족에서 따져보는 시각도 많다. 개혁저항 흐름과 반론을 견뎌내고 추진력을 확보하기 위해 팀플레이가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서울대 오연천(吳然天.재정학)교수는 "혼자 뛰는 김대중 대통령에게 연민의 정이 느껴진다" 고 말했다.

그는 "金대통령말고도 정치.경제.사회.문화의 각 분야에서 능력을 검증받은 전문가들이 기용돼 스타플레이어가 돼야 한다" 고 제안했다. 이들이 팀을 짜 개혁의 네트워크를 형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