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마리 1억 '뒷방고기' 신분상승 이유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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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1일 울산시 동구 방어진 수협 위판장. 길이 7.5m, 무게 2t짜리 밍크고래가 크레인에 거꾸로 매달렸다. 어선의 자망(직사각형 그물)에 걸려 죽은 뒤 위판장 경매에 나온 것이다. 중도매인 20여 명의 치열한 경합 끝에 1억1000만원에 낙찰됐다. 40여 년째 고래 경매를 해온 장세현(63)씨는 “비슷한 크기가 지난해 초까지만 해도 5000만원 남짓했다”며 낙찰가에 혀를 내둘렀다.

 이날 경매된 고래는 해체돼 음식점으로 팔려나갔다. 음식점에 넘긴 도매가는 가장 비싼 부위인 ‘우네(턱밑 살)’가 1㎏에 17만~18만원이었다. 1㎏에 7만원 수준인 쇠고기 등심의 두 배가 넘는 가격이다. 꼬리부위 역시 1㎏에 15만원을 넘는다. 고래 껍질(1㎏ 8만~9만원)과 내장(1㎏ 5만~6만원), 살코기(1㎏ 3만~4만원)도 지난해 초 이후 두 배로 뛰었다. 울산의 A고래 음식점 주인은 “보통 얼려서 회로 먹는 우네를 1인분에 4만~5만원 받는데, 지금 고래 값을 감안하면 8만~9만원은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울산에는 고래고기 전문 음식점 20여 곳이 있다.

 고래고기 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은 것은 지난해 1월 농림수산식품부가 고래유통증명제를 시행하면서부터다. 음식점은 해양경찰서가 발급한 고래고기의 유통증명서를 보관해야 하기 때문에 이른바 ‘뒷방고기’로 불리는 불법포획 고래고기가 귀해진 것이다. 고래문화보존회 고정구(48) 사무국장은 “1986년 상업포경이 금지된 후에도 고래고기 값이 그리 높지 않았던 것은 수협 위판장을 통하지 않은 밀거래가 존재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울산에서 유통되는 고래고기의 15%는 불법 포획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최근 숫자상으로는 고래 공급이 늘어났다. 전국에서 그물에 걸려 죽은 고래(혼획 고래)는 2009년 656마리, 2010년 656마리, 2011년 1098마리였다. 그러나 불법 유통되는 길이 막히면서 고래고기 값이 금값이 되고 있는 것이다. 울산해양경찰서 윤흥주(34) 경장은 “유통증명제 시행 후 적극적인 단속으로 증명서 발급이 안 되는 뒷방고기를 찾기 어려워졌다. 비싼 정상 고기만 써야 하니 금값이 된 것 아니겠느냐”고 분석했다.

 고래고기 값이 치솟으면서 대박을 노린 불법 포획도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해 8월 말 경북 동해안에서 4개월 동안 고래를 포획해 판매한 일당 57명이 경찰에 적발됐다. 이들이 포획한 고래는 무려 26마리로 2010년(13마리)의 두 배에 달했다. 국립수산과학원 고래연구소 손호선(45) 연구관은 “고래고기를 시장 상품으로 규정지어 적극적인 관리를 해야만 금값이 된 고래 값을 잡을 수 있다”고 말했다.

울산=김윤호 기자

◆고래유통증명제=농림수산식품부가 불법 포획을 금지하고 고래의 투명한 유통 과정을 관리하기 위해 만든 제도. 지난해 1월 제도 시행 후 해양경찰서장이 발급한 유통증명서가 있는 고래만 시중에서 사고팔 수 있다. 위반 시 2년 이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 벌금형에 처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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