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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안보 선진국 대한민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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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정연호
한국원자력연구원장

‘2012 서울 핵안보정상회의’가 열흘 앞으로 다가왔다. 국제안보 분야 최고위급 회의이자 우리나라에서 개최된 어떤 정상회의보다 규모가 큰 회의다. 이번 회의의 핵심 논의사항은 핵테러 대응, 핵물질 및 시설 방호, 핵물질 불법거래 방지 등 핵안보의 실현이다. 핵물질이 테러리스트의 손에 들어가거나 핵시설이 테러리스트에 의해 파괴되는 것을 막기 위해 국제사회가 힘과 지혜를 모으자는 것이다.

 국제사회가 ‘지켜내려는’ 대표적인 핵물질로는 고농축 우라늄(HEU)과 플루토늄이 있다. 둘 다 테러리스트의 수중에 들어가면 핵무기나 ‘더러운 폭탄(Dirty Bomb·방사성 물질 폭발물)’의 재료로 사용될 수 있다.

 HEU와 플루토늄 모두 위험하지만 핵안보에서 특히 중요시되는 물질은 HEU다. 플루토늄이 대부분 군사용으로 용도가 제한된 것과 달리, HEU는 민간 분야에서도 많이 쓰이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핵안보의 핵심 이슈 중 하나가 HEU 즉 ‘고농축 우라늄의 사용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대안은 HEU를 농축도 20% 이하의 저농축 우라늄(LEU)으로 대체하는 것이다.

 문제는 기술이다. HEU에서 LEU로의 전환에는 기술이 필요하다. 일부 고성능 연구용 원자로의 경우 각종 실험을 수행하기에 충분한 중성자를 발생시키기 위한 연료로 HEU를 사용한다. 이를 LEU로 바꾸려면 핵연료의 밀도를 매우 높게 만들어야 하지만 이게 쉽지 않다. 저농축 우라늄을 사용하면서도 고농축 우라늄에 버금가는 성능을 낼 수 있는 우라늄의 밀도를 최대한 가진 핵연료 물질이 U-Mo 합금이다. 이러한 U-Mo 핵연료를 사용하기 위해서 U-Mo 분말을 제조할 수 있는 기술이 필요한데 이 기술을 바로 우리나라가 가지고 있다.

 한국원자력연구원은 우라늄 합금을 섭씨 1700도의 고온에서 녹인 뒤 빠르게 회전하는 원판 위에 분사함으로써 미세한 구형 분말 형태로 급속 응고시키는 기술을 세계 최초로 창안해 핵연료 분말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이 기술은 아직 HEU를 사용하는 각국의 연구용 원자로 연료를 LEU로 전환하는 데 활용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의료용 동위원소를 만드는 데도 HEU가 일부 사용된다. 병원에서 받는 핵의학 진단 치료의 80%가 테크네튬(Tc)-99m이라는 방사성 동위원소를 필요로 한다. 테크네튬은 역시 방사성 물질인 몰리브덴(Mo)-99가 붕괴되면서 생성된다. Mo-99는 원자로 안에 우라늄을 집어넣어 핵분열시켜 만드는데 이때 HEU를 쓴다. 이를 LEU로 대체하려면 한정된 공간에 우라늄을 최대한 많이 넣는 기술이 필요한데, 아직 우리나라는 이 기술 전체를 가지고 있지는 못하지만 LEU를 얇은 판 형태로 제조하는 기술을 개발해 확보하고 있다.

 이를 활용해 2016년까지 부산시 기장군에 건설할 신형 연구로에 LEU를 이용한 Mo-99 제조 기술을 적용해 ‘고농축 우라늄 최소화’를 통한 핵안보 강화와 세계적인 동위원소 수급난 해소를 동시에 기여한다는 목표를 세워두고 있다.

 원자력의 속성상 핵안보는 정치적 문제이자 기술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우리나라는 이번 핵안보정상회의 주최국으로서 핵안보 강화를 위한 각국의 노력을 한데 모으기 위해 최대한 정치적 리더십을 발휘할 것이다. 동시에 우리가 개발해 온 기술로 세계적인 핵 비확산과 핵안보 강화에 기여할 수 있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모색할 것이다.

 이번 회의가 지난 반세기 동안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과 원자력 안전 강화에 앞장서온 ‘원자력 모범국’ 대한민국이 국제사회의 핵안보 강화 노력에 앞장서는, 핵안보 선진국으로서 자리매김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믿는다.

정연호 한국원자력연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