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view &] 얼굴 보고 얘기합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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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2면

최인아
제일기획 부사장

리더들에게 요구되는 덕목으로 최근엔 소통 능력이 많이 꼽힌다. 그도 그럴 것이다. 사회가 민주화되고 다원화될수록 사람들은 서로 다른 관점과 생각을 자유분방하게 표출하니까. 이런 상황에서 조직이 공동의 목표를 정하고 추구하기 위해서는 조직원들이 목표와 비전을 공유해야 하는데, 이 대목에서 리더의 소통 능력이 중요해지는 것이다. 소통 능력은 리더에게만 중요한 것이 아니다. 기업 자체의 소통 능력도 그 중요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

 최근엔 소통 방식도 많이 달라지고 있다. 지난달 말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는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가 열렸다. 이 행사는 세계적인 휴대전화 제조회사와 이동통신 회사들이 참가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이동통신산업 전시회다. 이 분야의 최첨단 기술을 가장 빨리 접할 수 있는 기회로 꼽힌다. 올해도 전시장 안에는 많은 부스가 마련돼 일반 참가자들도 최신 스마트폰을 직접 써 보면서 궁금한 것은 직원들에게 바로 물어볼 수 있었다.

 느닷없이 MWC를 거론한 이유가 있다. 최근 많이 변모한, 산업전시회의 대표 격이어서다. 요즘의 산업전시회는 특히 브랜드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식이 변화하고 있다. 과거 산업전시회는 유통업자(딜러)들이 참가해서 구매에 대해 상담하는 ‘제조사 대(對) 딜러’의 장(場)이었다. 즉, 제조사가 딜러들을 대상으로 가격·기술력·장점을 설명하고 거래를 성사시키는 행사였다. 당시에는 제조사가 제품을 만들고, 딜러가 소비자에게 팔기만 하면 되는 시대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마트폰 같은 디지털 기기와 정보습득 채널이 늘면서 소비자들의 정보력이 막강해졌다. 이에 비례해 최신의 제품을 직접 만나고자 하는 욕구도 커졌다. 이제 소비자들은 관심 있는 기업의 전시회에 참가해서 직접 브랜드를 체험한다. 적극적인 소비자일수록 정보를 찾아나서기 마련이다. 이런 이들에게 아직 시장에 공개되지 않은 최신 제품을 제조사가 직접 보여주는 전시회는 더없이 유용한 정보 탐색 기회인 셈이다. 그뿐만 아니라 소비자는 자유롭게 제품에 대한 느낌과 의견을 이야기할 수 있고, 기업은 바로 피드백을 주면서 기업과 소비자 간에 쌍방향 소통이 이뤄진다. 제품을 구매하기 전이지만 브랜드를 직접 체험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체험에 기반한 소통은 매우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우리 일상생활에서도 마찬가지 아닌가. 회사에서도 일을 하다가 문제가 생기면 하는 말이 있다. 바로 “얼굴 보고 얘기합시다”이다. 직접 얼굴을 보고 의견을 주고받는 소통이 가장 효율적인 커뮤니케이션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나온 말이다.

 예술에도 이런 소통을 접목시키려는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 ‘소셜 아트(Social Art)’라는 창작활동이 그에 해당한다. 예술가는 자신의 메시지를 그림이나 음악으로 전달한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고 있다. 스마트폰에 상대의 실제 얼굴과 가상 얼굴을 동시에 번갈아 나타나게 해서 보게 하거나, 천으로 만들어진 하늘의 영상을 손가락으로 누르면 색이 번지게 하는 경우도 있다. 작가와 관객이 쌍방향으로 소통하는 작품을 시도하는 것이다.

 이런 소통 노력은 대표적 전문가 집단인 의사들 사이에서도 활발히 시도되고 있다. 이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가 있다. 지난해 시카고 대학 병원에 매슈(86)와 캐럴린(82) 벅스봄 부부가 4200만 달러(약 475억원)를 기부했다. <중앙일보 2011년 9월 24일자 12면> 기부자 매슈는 수년 전 갑자기 큰 수술을 하게 됐다. 그때 이 병원의 주치의인 시글러 박사는 직접 최상의 수술진을 잡아주었고, 수술을 맡은 집도의와 함께 환자를 만나 조금이라도 수술에 참고가 되도록 병세를 자세히 설명했다. 그뿐만 아니라 수술실에도 함께 들어가 수술을 앞두고 두려워하는 매슈에게 용기를 주었다고 한다. 수술 결과는 당연히 좋았고, 그 뒤 매슈는 이 감동적인 체험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거금을 기부하기에 이르렀다. 소통의 관점에서 많은 것을 말해주는 사례다.

 누구나 소통을 말한다. 하지만 자신의 이야기를 일방적으로 말하는 것은 상대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 늘 소비자와 소통해야 하는 기업들이 이 점을 가장 먼저 알아차리고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고객이 기업의 메시지를 직접 체험하고 공유하는 쌍방향 소통으로 변모하고 있는 것이다. 당신의 메시지가 자기만의 일방적인 외침으로 끝나기를 원치 않는다면, 단지 말이 아니라 경험의 공유를 바탕으로 한 소통을 하라. 그래야 진정한 소통이 된다.

최인아 제일기획 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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