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헌재, 탄핵때 "대통령 없어도 경제 끄떡없어" 말했다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6면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 가결안이 통과되고 이틀 뒤인 2004년 3월 14일. 이헌재 당시 경제부총리(왼쪽)는 일요일에도 과천 재정경제부 청사를 찾아 기자들에게 “긍정적으로 시장을 봐달라”고 당부했다. [중앙포토]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이 가결된 건 2004년 3월 12일. 잊을 수 없는 날이다. 탄핵 소식이 전해진 오후, 나는 한강 다리를 일곱 번 건넜다.

 사상 초유의 탄핵 사태. 위기라면 겪을 만큼 겪었다는 나도 처음 겪는 일이었다. ‘시장은….’ 소식을 접하고 제일 처음 든 생각이었다. 경제부총리에 임명된 게 한 달 전, 대통령에게 신용불량자 대책을 보고한 게 불과 며칠 전이다. 신용카드 사태와 가계 대출 문제는 정점을 향해 치닫고 있었다. 경제가 폭발 직전인데 나라 경제를 책임질 대통령이 사라진 것이다.

 “경제는 부총리가 알아서 안정시켜 주세요. 오후 5시에 대책 회의를 합시다.”

 탄핵안 가결 직후 광화문 정부청사에서 만난 고건 국무총리. 졸지에 대통령 직무대행이 된 그였지만 침착했다. ‘행정의 달인’ 다웠다. 그런 모습을 보자 나도 어느 정도 마음이 놓였다.

 ‘시장을 안정시켜야 한다’. 서둘러 과천으로 넘어갔다. 비상 대책회의를 한 뒤 기자 회견을 자청했다. “일단 누가 경제를 확실하게 챙겨나갈지 시장에 분명히 메시지를 던질 필요가 있습니다. 그 책임은 내가 지겠습니다.”

 알렉산더 헤이그. 1981년 레이건 대통령 피격 사건 당시 미국 국무장관이었다. 그는 레이건의 수술이 시작되자 “부통령이 백악관에 귀환할 때까지 내가 백악관을 통제한다(I’m in Control here)”고 말했다가 구설에 올랐다. 지금 생각하면 내가 그때 그 모양새였다. 과하다 싶게 호언 장담했다. 어떻게든 시장 불안을 잠재워야 한다고 생각해서일까.

 “국민 생활 안정과 대외 신인도 확보에 만전을 기할 것입니다. 이번 사태는 경제에 문제가 일어난 것이 아닙니다. 불안해 할 이유가 없습니다.”

 서둘러 해외 신용평가사들과 접촉했다. “국가 신용등급을 낮추지 않겠다”는 구두 약속도 받았다. 그날, 나는 정신없이 움직였다. 광화문에서 과천으로, 다시 명동 은행회관의 은행장 회의로, 고건 총리 주재의 관계 장관 회의로. 정말로 다급한 상황이면 전화로 메시지를 전달했을 것이다. 이건 애매했다. 당장 뭔가가 터진 건 아니다. 시장의 불안한 심리가 문제다. 내가 직접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가는 곳마다 “시장은 끄덕없다. 걱정 말라”고 큰소리쳤다.

 “온 국민이 막연한 불안감에 사로잡히지 않고 전과 다름없이 경제 활동에 임한다면 이번 사태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해 우리 경제의 역량을 다시 확인하고 내외에 과시할 수도 있을 겁니다.”

 경제 역량의 확인과 과시. 이 말은 어느 정도 실현된다. 그것이 꼭 좋은 건 아니란 걸 나중에 알게 되지만 말이다.

 그날 저녁, 사무실로 돌아와 권태신 국제업무정책관에게 e-메일을 준비시켰다. ‘한국 경제의 기초는 여전히 강하다. 정치 불안은 일시적인 만큼 투자에 아무 문제가 없다’. e-메일을 내 명의로 국제통화기금(IMF)과 3대 국제 신용평가기관, 해외 금융기관 등 1000여 곳에 보냈다. 일요일인 14일에도 정부 과천청사에 나왔다. 다시 한번 기자들을 청해 시장에 당부했다.

 “과거 사례를 보더라도 긍정적으로 상황을 내다본 사람은 주식 시장에서 이익을 봤으나 비관적으로 주식을 투매한 사람들을 손해를 봤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겁니다.”

 경고처럼 말했지만, 애원하는 심정이었다. 대통령이 없는데 시장까지 급락한다면 도저히 불감당이다. 한번 번지기 시작한 불안감은 웬만해선 잡히지 않는다.

 내 노력이 먹힌 걸까. 시장은 생각보다 빠르게 안정됐다. 12일 잠시 출렁였던 증시는 금세 탄핵 전과 비슷한 수준으로 회복했다. 외국인들은 오히려 탄핵 직후 ‘사자’를 늘리기도 했다.

 4월 22일부터는 직접 홍콩·런던·뉴욕을 돌며 투자 설명회를 개최했다. 기조 연설뿐 아니라 직접 마이크를 잡고 영어로 질의 응답까지 했다. 뉴욕 설명회는 특히 성황이었다. 250여 명의 투자자와 국제금융 관계자들이 몰렸다. 40분을 준비했던 설명회 시간이 2시간 가까이로 길어졌다.

 대통령의 공백은 2개월 정도 이어졌다. 잠시도 긴장을 놓을 수 없던 시간이었다. 다행히 시장에 돌발 변수는 생기지 않았다. 몇몇 언론에선 반갑지 않은 칭찬까지 했다. “경제부총리의 위기 대응이 빛났다” “탄핵 전보다 오히려 더 경제가 좋아졌다” 식으로 보도했다.

 재무부 과장 시절, 큰맘 먹고 열흘 가까이 휴가를 떠난 적이 있다. 공직에 몸담고 처음으로 떠난 장기 휴가였다. 휴가 내내 마음이 불안했다. 그런데 돌아오니 모든 게 잘 굴러가고 있었다. 한편으론 안심이 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섭섭한 마음이 들었다. ‘내가 없어도 아무 일이 생기지 않는다’는 게 섭섭했던 것이다. 대통령과 주변 사람들도 그랬을까.

 생각하면 내가 386들과 각이 지기 시작한 건 탄핵 정국 때부터였다. “대통령이 없어도 경제는 끄떡없다”고 외치고 다녔으니 곱게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시장이 평온히 잘 굴러가는 것도 한편 섭섭한 마음으로 바라봤을 것이다. 묘하고 어색한 분위기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이런 분위기는 대통령이 돌아오고 모든 게 제자리로 돌아온 이후에도 이어졌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