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과 끊고 지내는게 이렇게 힘들 줄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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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생존게임은 외부세계와 철저히 단절된 공간 속에서 낯선 사람들끼리 사회를 형성해 가는 과정을 24시간 생중계 하는 리얼리티 쇼다. 아침 9시 전에 일어나 식사하고, 주어진 과제 수행하고, 어떻게 하면 더 좋은 시간을 만들지 의논하다 보면 하루가 후딱 지나간단다.

지난 10월 19일 오후, 경기도 용인 부근의 한 전원주택. 굳게 닫혔던 문이 열리고 마침내 방호석씨(27)가 모습을 나타냈다. 수백만 네티즌들의 호응을 받으며 국내 최초로 시도된 한국판 트루먼 쇼(본지 22호 76∼77쪽 참조)의 첫 번째 탈락자. 게임 시작이 지난 10월 5일 정오부터였으니 꼬박 2주일만에 바깥 세상으로 나온것이다. 그러나 정작 주인공인 방호석씨는 담담한 표정이다.

‘스무 개의 눈’이라 이름지어진 이번 생존게임 (http://www.twentyeyes.watchnjoy.com)은 외부세계와 철저히 단절된 공간 속에서 낯선 사람들끼리 사회를 형성해 가는 과정을 24시간 생중계 하는 리얼리티 쇼다. 신문, 방송은 물론 컴퓨터도 반입금지 물품. 지난 10월 5일 정오부터 시작됐고, 네티즌의 투표 결과에 따라 매주 1명씩 탈락하며, 최종 생존자에게는 5천만원의 상금이 지급된다. 그렇다면 참가자들은 그 안에서 무얼 하며 시간을 보낼까?

“매일 매일 과제가 주어지지만 의무사항이 아니기 때문에 하기도 하고 안 하기도 하고…. 주로 대화를 많이 나누죠. 각자 갖고 있는 지식과 경험도 나누고….”

아침 9시 전에 일어나 식사를 하고, 주어진 과제 수행하고, 어떻게 하면 더 좋은 시간을 만들지 의논하고…. 꽤 지루할 것 같은데 그렇지도 않은가 보다.

“시간 후딱 지나가요. 2주나 지났지만 바로 어제 들어갔다 나온 거 같은 걸요.”

낯선 사람끼리 모여 하나의 사회를 구성하고, 나름대로 질서를 형성하고, 각자 시간을 때울 방법들을 강구하고…. 일견 MT라도 온 듯하지만, 긴장감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참가자의 참가 이유며 사연이야 어떻든 죄인의 몸도 아닌데 몇 날 몇 일을 좁은 집안에 갇혀 있어야 하니, 물론 스스로 영어의 몸이 되었지만 어쨌든 갇힌 몸이니, 어찌 스트레스가 없을까. 그리고 자칫 잘못하면 방씨처럼 졸지에 탈락자가 되고 마니 말이다.

“사실 개인적인 사정이 있어 나올까 말까 갈등 중이었는데, 막상 나오고 보니 시원섭섭합니다.”

하지만 머쓱한 표정 속엔 서운한 기운이 조금은 남아 있었다. 애써 밝은 표정을 짓지만 그 웃음이 너무 밝아 오히려 안쓰러움을 더했다. 아무래도 10명의 참가자 중에서 최초의 탈락자가 되고 말았다는 부담이 단번에 털어지지는 않는 듯.

“글쎄요. 바보가 아닌 이상 기분이 좋다고 할 순 없겠죠. 그러나 이미 결정된 일인데요, 뭐. 세상엔 되돌리고 싶어도 되돌릴 수 없는 게 많지 않습니까?”

나이에 비해 생각이 깊다 했더니, 방씨는 인터넷 관련 이벤트 업체를 운영하고 있었다. 대학 1년을 중퇴한 후 ‘인터벤트’라는 사업체를 차린 게 벌써 3년 전이라고 한다. 사업을 하면서 포기할 건 일찌감치 포기할 줄 아는 기술을 익힌 듯 시종일관 여유를 보인다. “가수 조PD, 홍경민씨 등의 인터넷 홍보작업을 진행했죠. 인터넷 업체의 오프라인 이벤트도 도왔고요.”

인터넷 방송국 KISTV(http://www.kistv.com)와 한국통신이 공동으로 기획한 생존게임에 참가하게 된 것도 유명세를 통한 사업확장을 위해서라니 그 열정과 넉살이 벤처 사업가답다.

“역시 외부와 단절되었다는 것, 밖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전혀 알 수 없다는 고립감이 가장 견디기 어렵더군요. 참 김대중 대통령 노벨상 받았다면서요? 그거 정말이에요?”

남을 웃기지 않고는 스스로 짜증이 나 견딜 수 없을 정도로 활달한 성격을 갖고 있다는 방호석씨. 스스로 선택한 ‘묶인 몸’이었지만 어떻든 모처럼 얻은 자유를 만끽하며 한번 활짝 웃어본다. 그리고 다시 성공적인 인터넷 사업가의 길을 향해 힘찬 발걸음을 내딛는 그의 어깨 너머, 가을 햇살이 충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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