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돈·섹스·명성 … 미국인 불교학자는 어떤 해법 가졌을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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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돈, 섹스, 전쟁
그리고 카르마
데이비드 로이 지음
허우성 옮김, 불광출판사
240쪽, 1만5000원

서양인이 쓴 불교서적이 더 쉽게 읽히는 경우가 있다. 그들의 토종 종교가 아닌 까닭에 보다 객관적으로 접근하려고 노력했기 때문일까.

이유야 어쨌든 이 책이 그런 부류다. 특히 실제적인 소득이나 효과를 중시하는 서양인 특유의 합리적인 시선에 동양의 종교, 불교가 어떻게 비치는지를 엿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저자는 어지간히 불교 공부를 한 사람이다. 미국인이지만 하와이대·싱가포르 국립대 등에서 동양철학 등을 공부했고, 1980년대 중반 일본으로 건너가 선(禪) 수행에 매진한 끝에 법사(法師) 인가를 받았다. 일본 분교대(文敎大) 교수도 지냈다. 불교와 근대성과의 관계, 불교 가르침의 사회적 함의에 대한 관심이 많다고 한다.

 책에서 저자는 자신의 전공 분야 실력을 십분 발휘한 것 같다.

부제는 ‘현대사회의 딜레마들에 불교는 무엇을 말할 수 있는가’. 돈·섹스 등 책 제목에 나타난 항목 외에 명성·시간·언어 등 관념적 소재부터 유전자변형식품 같은 생활 문제까지, 현대문명의 ‘뜨거운 감자들’에 대한 불교적 해법을 모색한다.

 눈길을 끄는 대목은 역시 섹스를 다룬 7장이다. 서양의 경우 60년대 일었던 성(性) 혁명 이후 가능한 모든 방식의 상업화가 이뤄져 문화 전체가 성에 푹 젖어있다는 게 저자의 진단이다.

그런 흐름에서 한국도 자유롭지 못할 게다. 더구나 성에 관한 한 엄격하기 이를 데 없는 한국 불교를 떠올리면 저자의 논의는 한층 흥미진진하다. 성 문제에 있어서 불교의 가르침은 서구 사회에 또 한국 사회에 어떤 지혜의 등불을 비출 수 있을까.

 저자의 결론은 운명적인 사랑이 존재한다는 믿음, 만족스러운 섹스에서 오는 고양감 등은 망상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런 것들이 결코 고통의 바다로부터 인간을 구제하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불교 철학에 충실한 좀 심심한 대답이다. 책은 오히려 결론에 이르기까지 과정이 재미있다. 역사적 전거를 들어가며 섹스에 엄격한 불가의 관행을 역사적인 현상으로 상대화시킨다. 무턱대고 순결을 지지하거나 섹스를 반대하지도 않는다. 그런 현실적인 접근이 공감을 자아낸다.

 종교를 통한 현실개혁을 모색한 진지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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