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드 LA인] 26년간 풀리지 않은 살인극…진실 밝혀지나

미주중앙

입력

지난 한달여 주류언론들은 26년간 미제로 남았던 살인사건을 연일 집중 보도했다. 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된 LAPD 전직 여형사 스테파니 래저러스(51)의 재판이 결말을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검찰은 1986년 피살된 셰리 래스머슨(당시 29세)씨의 남편 존 루튼과 래저러스가 오랜 연인관계 였던 점을 들어 '치정에 눈먼 살인극'이라고 규정했다. 변호인측은 '직접적인 증거가 없는 사건의 피해자'라고 래저러스의 무죄를 주장하고 있다. 현재 그 판단은 배심원단에게 넘어간 상태다. 6일부터 유무죄 여부를 가리는 평결작업이 시작됐다. 과연 사건의 진실은 무엇일까.  

▶사건 개요=지난 1986년 2월 24일 신혼부부의 보금자리였던 밴나이스 지역 타운하우스에서 참혹한 시신이 발견됐다.

불과 3개월전 결혼한 새신부 셰리 래스머슨(29)씨였다. 그녀는 얼굴과 온몸에 폭행을 당한 뒤 가슴에 3차례 총상을 입고 숨졌다. 당시 사건을 담당한 LAPD는 강도의 소행으로 수사 방향을 잡았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뚜렷한 증거나 단서가 없어 수사는 제자리만 맴돌기를 거듭했고 결국 잊혀지는 듯 했다.

▶23년만의 검거=미궁 속에 빠졌던 사건이 다시 세상의 빛을 본 것은 지난 2009년 6월.

LAPD는 "과학수사가 또 한건의 개가를 올렸다"면서 "23년만에 미제사건의 범인을 붙잡았다"고 발표했다. 경찰이 지목한 용의자는 전국적인 관심을 끌었다. 미술품 절도사건 전문 베테랑 수사관인 래저러스 형사였다.

경찰은 살해 동기를 치정으로 내세웠다. 래저러스가 피살된 래스머슨의 남편 존 루튼과 오랜 기간 성관계를 가져왔다는 정황과 현장에서 발견된 DNA들이 증거였다.

▶증거들=이후 지속된 재판에서 검찰이 제시한 결정적인 증거는 피살된 래스머슨씨의 팔뚝의 이빨자국에서 추출한 범인의 DNA다.

당시 경찰은 범인이 문 이빨자국으로 추정해 남아있는 침을 면봉으로 닦아 보관해왔다. 1986년 사건 발생 당시에는 분석할 수 없었던 이 증거는 20여년만에 래저러스와 사건간의 연결 고리를 입증했다.

검찰은 이외에도 범행에 사용된 총기가 래저러스가 사용하던 38구경 리볼버와 동일한 총기임을 내세웠다. 래저러스는 사건 발생 이후 소지하고 있던 리볼버를 분실 신고했다. 이밖에도 사건 당일 래저러스가 휴가를 냈던 점도 정황상 증거로 채택됐다.

▶팽팽한 법정공방=2년여 계속된 재판은 지난 6일 최종심리로 일단락됐고 배심원단의 결정에 맡겨진 상태다. 이날 배심원들 앞에선 검찰과 변호인의 최후 변론은 그간 양측이 보여준 날선 공방의 정수를 보였다.

변호인측은 검찰이 결정적인 증거로 앞세운 DNA의 신뢰도를 집중 공략했다. 변호인측은 "20여년전 피해자의 팔뚝에서 발견된 극미량의 타액이 그동안 과연 제대로 보존됐을 것이라고 보느냐"면서 "그나마 분석결과도 여성이라는 점만 나왔고 래저러스가 관련됐을 것이라는 개연성을 시사한 것 뿐 직접적인 증거는 아니다"고 반박했다.

이에 검찰측은 "변호인측의 발언은 배심원단을 기만하려는 절박한 시도"라고 응수했다. 검찰은 "이번 사건 수사는 20여년간 엉뚱한 방향으로 향해있었다"면서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사건을 조작할 수 있는 위치에 있고 오랜 연인의 배신이라는 동기를 갖고 있고 살해 흉기를 소지할 수 있는 용의자가 또 누가 있느냐"고 설득했다.

배심원단은 6일에 이어 7일 하루종일 평결작업을 벌였지만 합의를 이뤄내지 못했다.

헤드LA인은'LA의 머릿기사'라는 뜻입니다. LA의 주류언론들이 심도깊게 다루는 현안이나 사건들을 소개하는 새로운 코너입니다. 기사의 의도는 한인 관련으로만 집중된 한인언론 취재 선택의 폭을 넓히기 위함입니다. 한인타운이라는 섬에서 벗어날 수 있는 다리를 놓겠습니다.

정구현 기자 koohyun@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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