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깔 한자’로 창업했죠, 79세 김인술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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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김인술씨가 개발한 한자 교재. 한자의 획을 빨강, 파랑, 초록색으로 구분해 한자를 배우는 어린이들이 기억하기 쉽고 빨리 배울 수 있다. 종이는 화이트보드처럼 쓰고 지울 수 있는 특수용지를 썼다. 김씨는 이 한자 교재를 특허청에 특허출원했다.

“내 나이가 많다고요? 나는 아직도 꿈 많은 중년입니다.”

 팔순이 가까운 나이에 창업에 도전한 김인술(79)씨의 말이다. 김씨는 지난해 8월 서울 강남구 장년창업센터에 입주해 ‘꿈아이서당’을 차렸다. ‘사장’이 된 것이다. 사업 아이템은 ‘한자교육’. 은퇴 후 소일 삼아 인근 어린이집 아이들에게 한자를 가르치던 경험을 살렸다.

 일제강점기 때 초등학교를 졸업한 그는 젊은 시절 무역회사에서 일본 수출입 업무를 담당했다. 한자가 많은 일본어를 배우느라 한자를 익히게 됐는데 이게 인생 2모작의 원동력이 됐다. “20년 전 퇴직하고 가끔 일본어 자원봉사를 하던 차에 2003년 구청에서 노인일자리사업으로 아이들에게 한자를 가르쳐 보라고 하더군요. 곧잘 따라하는 아이들을 보니 뿌듯했어요.”

 한두 해 지나자 욕심이 생겼다. “한자를 좀 더 쉽게 가르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하는 고민이었다. 때로는 밤잠도 자지 않고 연구에 몰두했다. 그러던 중 일본어를 배우던 젊은 시절이 떠올랐다. 단순히 종이에 여러 번 글자를 옮겨 쓰던 방법이다. 직접 쓰는 것만큼 좋은 학습법은 없다. 하지만 싫증을 내기 쉬운 아이들의 눈길을 끌려면 다른 방법을 고민해야 했는데 이렇게 나온 것이 색깔을 활용한 교수법이다.

 김씨는 “글자를 배우려면 필순부터 정확히 알아야 하는데 획마다 색깔을 다르게 써 넣는 글자교육을 해 보니 아이들의 학습 속도가 빨라졌다”며 “이 방법으로 배운 아이들은 모두 8급 한자시험에 합격했다”고 자랑했다.

 제자들을 선전하면서 그의 명성도 함께 올라갔다. 여기저기서 ‘한자를 가르쳐 달라’고 연락해 왔다. 일부는 “개발한 교재와 교수법이라도 알려 달라”고 했다. 밀려드는 요청에 김씨는 체계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지난해 장년창업프로젝트에 참가했다. 교수법에 대한 특허도 2개나 출원했다.

 반응은 좋다. 올해 종로구와 마포구의 일부 어린이집 원생 200여 명이 김씨의 교재로 한자를 배우고 있다. 교재 출판 제의도 계속되고 있다. 앞으로는 인터넷과 스마트폰 등에서 활용할 수 있는 한자교육도 내놓을 예정이다. 그는 “창업한 뒤 매일 눈을 뜰 때마다 나에게 주어진 기회들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느낀다”며 “앞으로는 다문화가정이나 문맹자들을 위한 교재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김씨 같은 노·장년층의 성공창업 스토리를 담은 전자책 『시즌 2, 자신만의 스토리로 창업한다』를 공개했다. 인터넷 블로거 강사로 일하는 허정자(68)씨와 한글로 디자인한 티셔츠를 만드는 김나무(64)씨 등 18명의 이야기가 담겼다. 이 전자책은 서울시(ebook.seoul.go.kr)와 서울산업통상진흥원(www.sba.seoul.kr)에서 볼 수 있다. 강병호 일자리정책관은 “이들의 창업사례가 예비 창업자들에게 교훈과 자신감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최모란 기자

김인술씨의 한자 공부 비법

① 직접 써라 보고 읽는 것보다 빨리 익힌다
② 부수와 뜻을 알라 부수는 한자의 핵심이다
③ 필순을 기억하라 한자도 쉽게 쓸 수 있다
④ 색깔로 변화를 줘라 기억에 오래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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