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결혼한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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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ins 오현아 기자

"우리는 안다. 이혼이라는 것이 아주 독한 감기 같다는 것을. 우선 그것은 열로 시작해서 콧물과 눈물로 넘어가고, 그 다음엔 '침대 속의 케이오' 단계로 넘어간다. 게다가 이혼에는 감기처럼 처방전도 없고, 약도 없고, 그저 그게 지나갈 때만을 기다려야 한다."(〈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여행〉22쪽)

열 살 꼬마의 눈에 이혼한 부모의 삶은 어떻게 비칠까.〈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여행〉(즈느비에브 쉬레 지음, 김은정 옮김, 작가정신 펴냄)의 주인공 또마에게는 부모의 이혼이 '독감' 같은 것이다. 완전히 '케이오' 당해 정신을 못 차려도 한바탕 몸살을 앓아야 몸이 가뿐해지는.

이 책은 프랑스 잡지 '주르날 드 바르비(Journal de Barbie)' 기자인 즈느비에브의 자전적 소설이다. 즈느비에브 자신이 이혼한 경험을 갖고 있으며 소설에 등장하는 세 아이들은 지은이의 아들로 이름도 실명 그대로 쓰고 있다.

원제 '엄마가 결혼한다면?(Et Si Maman Se Mariait?)'에서 알 수 있듯이 이혼한 엄마가 새로운 사랑을 찾기까지의 과정이 열 살 꼬마의 눈을 통해 따뜻하게 그려지고 있다.

두 형들과 사는 또마는 남자친구와 헤어진 엄마를 위로할 정도로 맹랑한 꼬마다. 우울해하는 엄마를 위해 담임 선생님을 미국 여배우로 둔갑시키는 빅쇼를 준비하기도 하고, 울어서 눈이 새빨개진 엄마를 꼭 안아주기도 한다. '사람이 슬플 땐 추울 때처럼 서로 아주 세게 껴안으면 심장이 다시 따뜻해지는 법'(이 책 18쪽)이라면서.

매일 엄마, 아빠가 싸워서 미칠 지경이라고 투덜대는 친구 프레드에게 또마는 짐짓 어른스럽게 충고하기도 한다. 부모님이 이혼해도 아무렇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라고, 그렇게 하는 게 부모님한테 얼마나 힘이 되는지 아느냐고.

또마는 부모의 이혼과 재혼을 '그럴 수도 있는 것'으로 받아들인다. 물론 할아버지 할머니처럼 엄마 아빠가 헤어지지 않고 함께 살았으면 하는 바람도 있지만, '결손가정'이라고 엄마 아빠를 원망하지도, 자신을 비하하지도 않는다.

자기와 형들, 엄마한테 잘해주기만 하면 엄마의 새 남자친구로서 '만사 오케이'다. 적응할만 하면 남자친구가 사라져 버려도 잠깐 짜증을 낼 뿐이다. 다만 엄마가 자신들 때문에 남자친구와 헤어질 수 있다는 생각이 안 드는 게 문제지만.

모형 기차를 좋아하는 또마에게는 빨리 이루어야 할 간절한 꿈이 있다. 세상에서 제일 높은 역을 지나는 '안데스 산맥 횡단열차'를 타는 것이다. 구름 속을 올라가는 작은 기차, 침을 퉤퉤 뱉는 것처럼 연기를 내뿜으며 안데스 산맥을 기어오르는 아름다운 증기 기관차를 타는 꿈 말이다.

언제 이 열차가 없어질 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또마는 자신을 페루로 데려다줄 엄마의 새 남자친구를 찾아나선다. 세계 전역을 돌아다니는, 예전 남자친구인 삼을 엄마와 다시 연결시키려고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다.

'어른들의 도움이 필요없을 정도로 크면, 그때 페루의 증기 기관차를 보러 가겠다'고 짐짓 유쾌하게(물론 속으로는 지독한 절망에 빠지지만) 다짐할 무렵, 엄마에게 새 남자친구가 생긴다. 또마는 과연 기차를 타고 구름 속을 지나가는 황홀감을 맛볼 수 있을까.

자전적 소설인 만큼 즈느비에브는 실제로 새 남자친구 장과 재혼해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또 열 살 꼬마였던 또마는 이제 스물 한 살의 어엿한 청년이 되었다.

엄마가 결혼한다면? 결혼이 '당첨되기 어려운 복권'이라고 하지만 새로운 시작을 위해서는 또다시 복권에 운을 맡겨야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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