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마지막 전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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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마지막에서 다시 시작되는 인간의 역사

핵 전쟁 이후인 듯 싶은 모호한 시간적 배경과 황량하고 쓸쓸한 사막 속에 이름을 알 수 없는 주인공이 생존 그 자체를 위한 전투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도시는 폐허가 되고, 대기오염과 이상기후로 인간은 말할 수 없게 되었다.

이곳에서는 죽이는 자와 죽임을 당하는 자, 선한 자와 악한 자의 구분이 무의미하다. 언어와 대상을 잃어버린 인간에게 중요한 것은 삶이 아닌 목숨이다. 그는 자신의 생존을 위해 살인을 저지르고, 비행기를 타고 낯선 또 다른 폐허 위에 불시착한다.

새로 정착한 도시에서 그는 악당을 만나 결투를 벌이다 부상을 입고, 우연히 병원 건물로 들어가게 된다. 그곳에서 만난 의사는 그를 치료해주고, 마치 문명의 시작을 예언하고 기록하듯 벽화를 그리고, 주인공이 가져보지 못한 문명의 생활을 영위하고 있다.

무엇보다 의사에게는 이 세계에 거의 존재하지 않는 여인과 인간이 말할 수 있게 만드는 특수 기체가 있다. 잠시나마, 주인공은 의사로 인해 야만적 생활에서 문명의 생활로 적응하게 되고, 여인의 등장으로 새로운 희망을 얻게 된다.

하지만 자연의 이상 기후로 의사는 죽음을 맞이하고, 여인은 악당의 손에 처참히 살해된다. 주인공은 다시 목숨을 건 절박한 전투를 악당과 벌이게 된다. 다시 사막으로 돌아간 그는 그곳에서 자신을 쫓던 무리들을 찾아간다.

그러나 그의 모습은 예전에 사막에 있던 전사의 모습이 아니다. 흰 양복을 입고 창이 아닌, 총과 칼을 지니고 있다. 그의 표정은 세상의 은밀한 법칙, 폐허 속에 숨겨진 뭔가를 발견한 얼굴이다. 세상은 다시 시작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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