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태지 "열정있으니까 젊은 음악하죠"

중앙일보

입력

"제가 늦었죠?" 서태지는 약속한 인터뷰 자리에 나타나며 밝은 얼굴로 이렇게 인사를 건넸다.

"11월 중순부터 계획된 전국순회공연을 위해 매일 오후 3시부터 새벽 3시까지 12시간씩 연습에 매달리고 있다"는 그는 "미국에서 지쳤던 몸과 맘을 충전할 수 있었던 덕분인지 격렬한 연습에 그저 신이 날 뿐"이라고 말했다.

녹음기를 꺼내자 그는 "그것 없으면 훨씬 자유롭게 얘기할 수 있는데…"라고 말해 직전에 배터리를 갈아끼운 녹음기를 끄도록 유도했다.

오랜 기간 철저히 자신을 감추었던 이유 등 다소 걸끄러운 질문을 많이 던졌다.

- 새 음반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 '그리 새롭지 않다' '실험적이지도 않다'는 지적도 있다.

"반응을 다 접하지는 못했다. (좀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으며)나름대로는 새로운 것을 보여주려 했는데…내 음악이 콘(Korn)과 비슷하다고들 말하는데 이런 계열의 음악을 하는 뮤지션 치고 콘의 영향을 받지 않기는 어려울 것이다. 오히려 외국인들은 모두 새로운 사운드라고 평가해줬다. "

- 그만큼 자신있다는 말인가.

"그렇다. 지금까지 내가 한 것 중에 제일 낫다고 생각한다.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내 자신이 이런 음악한다는게 스스로도 믿기지 않을 때도 있다." (서씨는 이 말이 와전되는게 못내 걱정된다는 듯 "내가 잘났다는 얘기가 아니라 앞서가는 음악을 하기에 국내 환경이 열악하는 뜻" 이라고 설명했다)

- 가사를 알아듣기 힘들다는 지적도 많다.

"워낙 사운드가 강렬하기 때문이다. 가사가 묻히는 경향이 없지 않다. 그러나 음악적으로 볼륨의 한계가 있기 때문에 가사를 잘 들리게 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내가 들려주고 싶은 것은 음악 그 자체이지 가사가 아니다."

- '탱크'라는 곡이 '엿같아'라는 가사때문에 방송불가 판정을 받았는데.

"답답하다. 가사에 욕을 넣는 것을 나 스스로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방송국 나름의 기준도 인정하지만 현실성 있는 기준이 필요하다고 본다."

- 하드코어적인 음악을 택한 특별한 이유가 있는가.

"이 음악의 핵심은 에너지다. 내가 더 나이들기 전에 이런 음악을 통해 에너지를 발산할 수 있어 고맙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나는 좋은 의미에서 이 음악이 '변태'라고 생각한다. 이 음악을 통해서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지 않는 것, 색다른 감정을 찾아내 전달할 수 있으니까."

- 하지만 새 음반의 대중성에 대해 의견이 엇갈린다. 대중성은 어느 정도 고려하는가.

"내게 중요한 것은 내가 하고 싶은 음악을 하는 것이고, 그것은 바로 새로운 음악, 가장자리(그는 '엣지'(edge)라는 표현을 썼다)에 서 있는 음악이다. 열정 없이는 안되는 작업이다. 누구나 듣기 좋은 음악을 굳이 내가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의도하지 않아도 음악을 만들다보면 자연스럽게 대중에게 어필할 수 있는 음악이 만들어지는 것 같다. 대중성에 대해 특별히 고민하지는 않지만 명곡은 대중성도 갖추고 있다고 늘 생각한다."

- 일부는 20대 후반이면서 10대 음악을 한다는 것, 그리고 수입도 좋으면서 불만과 저항정신을 담는 음악을 한다는 것이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하는데.

"(이해할 수 없다는 투로)나는 젊은 음악이 좋다. 그래서 한다. 나이가 문제가 아니라 열정이 문제다. 돈과 음악을 그런 식으로 연결해야 하나. '배가 고파야 음악한다'는 그런 생각이 치졸하다고 본다. RATM(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처럼 저항하기 위해 음악하는 그룹도 있지만 모든 뮤지션이 사회운동가가 돼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 이미 한국에서도 이런 음악을 하던 그룹이 있었다. 어떤 이들은 이제서야 '하드코어' 운운하는 분위기에 대해 씁쓸해했다.

"내가 가장 억울하게 여기는 부분이다. 내가 은퇴하기 전에 비해 국내 언더그라운드 그룹이 엄청난 발전을 했다. 아직은 시작단계니까 제대로 주목받지 못해서 그렇지 그들은 충분한 잠재력을 갖추고 있다. '나는 언더에 있는데 가난하고, 너는 부자…', 이런 식의 생각은 좀 잘못된 것 같다. 나는 어디까지나 '같이 가자'는 입장이다. 중요한 것은 대중에게 전달하는 것이다. 방송도 문제다. 이런 음악을 전혀 틀어주지 않으니까 사람들이 잘 모르지 않는가."

- 하드코어가 주류가 될 수 있다고 보는가.

"크게 부상할 수는 있지만 그러기는 힘들거라고 본다. 판매량에 목숨 걸면 이런 음악 못한다. 많은 사람들이 들어줬으면 하는 바람에서 마케팅에 신경쓰고 싶지만 말이다."

- 지나치게 마케팅에 신경쓴다는 비난도 있는데.

"이번엔 마케팅 차원에서보다는 내가 하고 싶은대로 했다. 그래서 안보여 주고 싶은 거는 안보여주려 했고. 틀에 박힌 시선으로 바라보면 오해할 수도 있지만."

- 열성적인 팬들이 많다보니 조금만 비판적인 기사를 써도 항의메일이나 전화에 시달리게 된다. 인터넷의 폭력성에 대해 생각해본 적은 있는가.

"위험수위에 있다고 생각한다. 다른 의견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점을 인식할 수 있으면 좋을텐데…"

- 팬들이 당신의 공연을 보기 위해 수업을 빠지거나 생활에 충실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는가. 팬들이 당신 음악 자체를 좋아한다기보다 당신이 하니까 좋아하는 것 같기도 하다.

"나 개인에 집착하지 말고 음악을 즐기라고 얘기해주고 싶다. 좋아하는 사람이나 공연을 위해 기다리고, 미친 듯 공연을 즐기며 스트레스를 푸는 것은 가끔 한다면 재미있는 경험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자주 그러면 안좋다. 나를 통해 색다른 음악에 더 관심을 가져주질 바란다."

다소 여성스러워보이는 외모와는 달리 그는 아주 거침없는 언변으로 인터뷰에 응했다. "일본·미국 진출이 눈앞에 와 있다"는 그에겐 자신감이 넘쳐 보였다. 그에겐 선입견·편견·고정관념에 대한 거부감이 분명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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