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재룡의 행복한 은퇴 설계] 베이비부머 시니어 잡, 풀타임보다 파트타임을 좋아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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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퇴직한 심모(58)씨는 회사에서 제안한 경영 자문역을 거절하고 신용불량자를 대상으로 재무상담을 해주는 봉사활동을 한다. 회사에 남으면 100만원 정도의 월 수입이 계속 나와 심씨의 부인은 회사의 제안을 반겼다. 하지만 심씨는 사회를 위해 봉사하는 일을 택했다. 그는 “더 이상 매일 회사에 나가고 싶지 않았다”며 “일주일에 2~3일 정도 나가는 지금 일에 매우 만족한다”고 했다.

베이비부머의 사회참여 방식이 변하고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2010년 연구에 따르면 노후에도 여전히 주 5일 풀타임 근로를 희망하는 베이비부머는 31.1%에 그쳤다. 이에 반해 주 5일 파트타임 또는 주중 2~3일 풀타임 근로 등 보다 유연한 근로를 희망하는 비율이 68.9%로 더 높았다. 현재 고령자들이 사회에 참여하는 주된 목적은 소득창출이라는 생계형 이유가 많다. 하지만 베이비부머들의 본격적인 은퇴 이후에는 일을 통해 봉사하고 보람을 느끼려는 사람이 많아질 것이다. 지난해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이미 고령 취업자의 38.6%가 ‘일하는 즐거움’을 취업의 이유로 꼽았다. ‘생활비에 보탬을 주기 위해’라는 생계형 이유(53.1%)에 이어 두번째다.

 이런 변화에 맞는 사회적 일자리나 참여 기회가 확대돼야 한다. 은퇴 선진국이랄 수 있는 미국은 노인들이 젊은이들과 경쟁하기보다는 장점을 충분하게 발휘할 수 있는 일자리가 활발하게 만들어진다. 미국에서 은퇴자들에게 시니어 잡을 보급하는 ‘시빅 재단’은 은퇴자에게 적합한 시니어 잡(Senior job)을 ‘성숙되고 특화된 분야이면서 6개월에서 2년의 집중적인 교육으로 가볍게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는, 젊은이들이 선호하지 않는 분야의 일’이라고 정의한다.

 예를 들어 교육분야에서 전통적인 교사는 젊은 사람들이 하는 대신, 교사를 지원하고 교과서를 개발하며 계속 수정하는 업무는 시니어들이 담당하는 식이다. 시빅 재단에 따르면 은퇴자들은 건강·환경·정부·교육·비영리단체 등 5가지 분야를 가장 선호한다.

 반면 우리나라의 시니어 잡에 대한 논의는 다소 혼란스럽다. 노인 일자리를 창출하면 젊은이들의 실업이 늘어난다고 논쟁한다. 이 때문에 정부나 전문가들은 매우 조심스럽게 노인 일자리에 접근하고, 제한된 범위 내에서 노력한다. 이런 논쟁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젊은이들과 결코 경쟁하지 않는 일자리를 창의적으로 만들어 내려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일본처럼 노후에 지역사회로 돌아가 비영리 민간단체 등을 통해 지역 주민을 위해 봉사하는 일자리를 활성화할 수도 있다. 은퇴 후 일자리를 준비하는 사람들도 생각을 바꿔야 한다. 노후 일자리는 부족한 생활비를 채워주는 동시에 자아성취의 중요한 수단이 된다.

우재룡 삼성생명 은퇴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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