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소녀와 르네상스 소녀 만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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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네덜란드 화가 쿠스 반 쿠오렌의 ‘아잇제와 피사넬로’(2003). 르네상스 시대의 옆얼굴 초상화 전통을 오늘날에 적용했다. 전통과 현대의 만남이다. [서울대미술관]

오늘날의 소녀가 르네상스 시대의 소녀와 마주보고 있다. 말 그대로 전통과 현대의 만남, 15세기의 옆모습 초상화 형식을 현재로 가져왔다. 네덜란드 화가 쿠스 반 쿠오렌(72)의 ‘아잇제와 피사넬로’다.

 화가는 순수함의 상징으로 자신의 어린 딸 아잇제의 초상을 그렸고, 그와 대칭되게 이탈리아 르네상스 화가 피사넬로가 그린 형식의 초상화를 배치했다. 인문주의자들의 지성에 대한 순수한 탐구가 이뤄지던 르네상스 시대의 형식이다. 서울 신림동 서울대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네덜란드의 마술적 사실주의: 전통에서 현대까지’의 표제작이다.

 쿠오렌은 네덜란드 마술적 사실주의(Dutch Magic Realism)의 전통을 따르는 화가다. 마술적 사실주의는 환상적 풍경을 사실주의적 기법으로 그린 1920~30년대 네덜란드 사조다. 1, 2차 대전 사이, 불안한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 순수의 세계를 동경했던 이들의 사투가 담겨 있다.

 캐럴 윌링크(1900∼83), 임 슈마허(1894∼1986) 등 마술적 사실주의의 대표 작가들의 작품과 함께, 이를 이어받은 현대 네덜란드 구상화가들의 작품 71점이 소개된다. 지난해 한국-네덜란드 수교 50주년을 맞아 미술관이 ING그룹과 공동 기획했다. 모두 네덜란드에 기반을 둔 금융회사인 ING그룹 소장품들이다.

 미술관 오진이 학예사는 “전시작들의 분위기는 한마디로 ‘불안한 현실과 순수에 대한 동경’으로 요약할 수 있다. 가까운 앞날도 예측할 수 없는 불안한 현실 은 지금의 우리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설명했다.

 전시작가들은 국내에서 생소한 편이다. 하지만 작품들은 인물·정물·풍경 등 사실주의 전통의 구상회화들이라 일반인이 감상하기에 그리 어렵지 않다. 난해한 추상미술에 고단했던 관객들, 전시장에 가면 작품보다는 작가 이름이 적힌 명제표부터 확인하는 습관을 가진 관객들에게 추천한다. 작가의 유명세 여부에 연연하지 않고, 그림 자체를 즐길 수 있다. 4월 12일까지. 성인 3000원. 02-880-9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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