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이 회장님 … 회사 사정 낱낱이 알려 드려야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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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8일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에서 ‘2011년 코스닥시장 공시 우수법인’ 시상식이 열렸다. 왼쪽부터 김정우 우리산업 대표이사, 김창현 태광 부사장, 이용희 제이브이엠 대표이사, 진수형 한국거래소 코스닥시장본부장, 이상호 브리지텍 대표이사, 한대근 실리콘웍스 대표이사. [한국거래소 제공]

“㈜한화의 공시 위반이 담당자 착오 때문이라고요? 우리 회사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인데….”

 한화가 대주주의 횡령·배임 관련 혐의를 1년 늑장 공시하는 바람에 이 회사 주식 거래를 정지시키느냐를 놓고 소동이 벌어진 지 사흘 뒤인 8일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에선 작은 행사가 하나 열렸다. 코스닥시장 공시 우수법인 시상식이다. 공시를 얼마나 정확하고 제때 했는지를 평가한 결과, 코스닥 기업 5곳이 상을 받았다. 제이브이엠과 브리지텍·실리콘웍스·우리산업·태광이다.

 이들 공시 모범 기업 담당자들은 “공시는 개인 책임이 아니라 회사 차원의 문제”라며 “대한민국 10대 그룹이 이를 소홀히 했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포장기계업체 제이브이엠 장용석 회계부장은 “오너가 공시의 중요성을 얼마나 잘 이해하고 책임감을 갖고 있느냐가 중요하다”며 “오너가 기업이 자기 것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공시를 귀찮게 생각하고 소홀히 하게 된다”고 말했다. 제이브이엠 창업자인 김준호 부회장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 중 하나는 속이지 않는 경영”이라며 “투명하고 정확하게 공시하라”고 직원들에게 끊임없이 요구한다고 한다. 그렇다 보니 매주 회의 때마다 각 부서에서는 자발적으로 공시할 정보를 끊임없이 내놓는다. 장 부장은 “(공시 사항인지 판단이 서지 않을 때) 거래소 공시 담당자가 귀찮아할 정도로 묻고 또 물었다”며 “(한화가 잘 몰랐다면) 거래소에 물어봤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 회사 조직도에는 창업주 김 부회장 위에 공석으로 회장과 고객을 함께 비워놓고 있다. “우리 기업에 회장은 오직 고객뿐이고 고객이 늘 우리를 보고 있다”는 창업주의 마인드를 반영한 조직도다. 장 부장은 "회사 사정을 낱낱이 공시하고 있다”며 “회장님(고객)이 회사에 대해 알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공시에 각별히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나머지 네 곳도 비슷했다. ▶오너가 ‘투명한 경영’을 중시해 공시를 직접 챙기는 것은 기본이고 ▶사내에서의 정보 교류가 활발하고 ▶지배구조가 투명했다. 또 고객·주주 존중이 몸에 뱄다는 점도 공통점이었다.

 자체 개발한 제품으로 콜센터 구축·운영업무를 제공하는 브리지텍은 대주주 이상호 대표이사 외에 배우자나 자녀 등 친인척 보유 주식이 한 주도 없다. 또 회사 관계자 친인척 명의의 회사와는 거래를 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잡음이 일어날 소지를 원천적으로 봉쇄한 셈이다. 이 회사 재무팀 윤영규 과장은 “조직이 커질수록 공시 담당자가 취합할 수 있는 정보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소통이 굉장히 중요하다”며 “숨기지 않고 공유하려는 분위기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우리 회사는 임직원들이 먼저 ‘공시사항 아니냐’고 물어온다”고 덧붙였다.

 공시 모범 기업들은 또 내부 소통 못지않게 거래소와의 공조, 주주와의 커뮤니케이션도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배관자재 제조·판매회사인 태광의 김지훈 기획실 차장은 “공시 요건을 자의적으로 판단하면 문제가 생길 수 있다”며 “애매하면 무조건 거래소에 문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자동차부품 생산·판매회사인 우리산업 염몽영 기획팀 차장은 “적극적으로 공시하라”는 조언을 했다. 그는 “많은 코스닥 기업이 정기공시 외엔 공시를 잘 하지 않는다”며 “주주와의 신뢰를 위해서라면 가급적 세세한 부분까지 공시하는 게 맞다”고 말했다. 반도체 부품 제조업체인 실리콘웍스 김성수 경영기획팀 과장은 “이번 한화 사태는 커뮤니케이션 부족에서 생긴 일이라고 생각한다”며 “타산지석으로 삼아야겠다”고 말했다.

강나현·정종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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