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세포처럼 번지는 경기조작, 위기의 프로배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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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프로배구가 경기조작 사건으로 뒤숭숭하다. 남자부 KEPCO의 전·현직 선수 다섯 명을 경기조작 혐의로 구속 및 체포 수사 중인 대구지검은 2월 말이나 3월 초 결과를 발표하겠다고 했다. 그때까진 서로를 의심의 눈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는 ‘경기조작 정국’이다.

 9일 대한항공과 현대캐피탈 경기의 관심사는 두 팀 선수의 ‘전출’ 여부였다. 대한항공이 14연승에 도전하고 있었지만 두 팀 감독은 “경기장에 오지 않은 선수가 있느냐”는 질문부터 받아야 했다. 전날 대구지검은 다른 구단으로 수사를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이날 빠진 선수는 의심을 받기에 충분한 상황이었다. 다행스럽게 두 팀에서 빠진 선수는 없었다. 양팀 등록선수 34명이 모두 경기장에 나왔다. 전날 불어닥친 경기조작 태풍이 일단 잠잠해진 모양새다.

 한국배구연맹(KOVO)은 경기조작이 다른 구단으로 확대되지 않을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배구판 자체가 무너질 수 있어서다. 경기조작은 해당 프로스포츠계에 퍼진 급성 암세포와 같다. 빠르고 강력하게 그 판을 집어삼켜 버린다. 경기조작 파문의 여파는 그래서 가볍지 않다. 악재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가장 먼저 상승세를 타던 배구 인기가 직격탄을 맞을 전망이다. 올 시즌 프로배구는 흥행 가도를 달리고 있었다. 역대 최다 관중 기록을 갈아치운 지난 시즌(188경기·34만5549명)보다 더 호황이었다. 경기조작 파문은 이런 열기에 찬물을 끼얹어버렸다.

 남자부의 숙원이었던 드림식스 인수팀 찾기도 난관에 부닥칠 가능성이 커졌다. 모기업이 사라진 드림식스를 위탁 관리하고 있는 KOVO는 그동안 인수 기업을 물색해 왔다. 김홍래 KOVO 홍보팀장은 경기조작 사건이 드림식스 인수 기업 찾기에 미칠 여파를 묻자 “긍정적이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상무신협의 운명에 대한 논란 역시 재점화할 전망이다. 프로배구계에서는 상무신협 선수들의 경기조작 가담 가능성이 흘러나오고 있다. 상무신협은 군 팀이어서 급여가 적다. 돈의 유혹에 흔들리기 쉽다. 아직 밝혀진 것은 없지만 검찰 수사가 확대된 만큼 연루된 선수가 나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최하위로 처진 상무신협은 “우리와 경기할 땐 외국인 선수를 빼고 하자”고 제안해 기존 구단과 갈등을 겪고 있다. 상무신협이 아마추어로 가야 한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이런 상황에서 경기조작 가담자가 나온다면 치명타다. KOVO는 수사 결과를 지켜보고 상무신협의 프로 잔류에 대해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신영철 대한항공 감독은 “KOVO가 사건을 빨리 마무리해 피해를 최소화했으면 좋겠다. 이번 일을 배구계가 다시 올라가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라고 자성의 목소리를 냈다. 이날 경기에서는 현대캐피탈이 3-0(25-20, 25-17, 25-20) 완승을 거두고 대한항공의 14연승을 저지했다.

인천=김우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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