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일본엔 사느냐 죽느냐 다루는 예술이 필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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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조 후미오

“예술은 삶과 죽음의 문제를 다룬다. 그게 바로 대지진을 겪은 일본, 경제위기에 빠진 세계에 예술이 필요한 이유다.”

 긴 한숨 끝에 답변이 돌아왔다. 모리미술관 난조 후미오(南條史生·63) 관장에게 “동일본 대지진 같은 재해, 그리고 경제침체와 양극화 문제가 심각해지는 세상에서 예술이 무엇을 할 수 있을까”라고 물은 참이었다.

모리타워 50층 집무실에서 3일 난조 관장을 만났다. 도쿄 시가지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사무실은 그림 한 점도 없이 책으로 가득했다.

 - 예술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모리타워

 “미술은 철학이다. 구체적으로 뭔가 도움이 되기보다 사느냐 죽느냐 하는 문제 앞에서 의미가 있다. 쓰나미로 떠내려간 집에서 살아남은 남자애가 있었다. 커서 뭐가 되려느냐 물었더니 예술가가 되고 싶다더라. TV에서 본 장면이다. 죽음과 삶의 체험을 하고 나니 ‘살아 있을 때의 시간은 이제 예술을 위해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한 게 아닐까. 그래서 예술은 필요하다.”

 - 한국 미술가로는 처음으로 이불이 개인전을 열었다.

 “이불은 이미 1990년대부터 퍼포먼스 등으로 일본에 소개됐고, 작가로서도 경력의 반환점을 돈 중견이다. 지금이 우리 미술관에서 회고전을 열 적기다.”

 - 간단히 답해보자. ‘난조에게 미술은 □다’라고 말한다면.

 “(망설임 없이) 미술은 ‘무엇’이 아니라 ‘모든 것’이다. 모든 것이 미술이 될 수 있다. 사람들을 더 창조적으로 만드는 게 미술이다. 그렇게 되면 모든 이가 예술가다. 사회를 바꾸는 것도 아트다.”

 -‘미술관은 □다’라고 묻는다면.

 “미술관은 미술에 대해 생각하는 플랫폼이다. 미술관은 여러 사람이 모이는 곳이며 큐레이터는 에디터, 미술은 미디어다.”

◆모리미술관=일본의 모리부동산이 2003년 롯폰기힐스에 개발한 초고층 빌딩 모리타워(사진)에 개관한 현대미술관. ‘천국과 가장 가까운 미술관’을 지향하며 53층, 지상 238m에 자리 잡았다. 오후 10시까지 개관하며 샐러리맨들의 발길을 끈다. 연간 200만 가까운 관람객이 몰린다. 난조 관장은 “미술관 바로 아래층에 전망대가 있어 평소 미술관에 다니지 않던 사람들이 전망대에 온 김에 현대미술을 본다. 이들이 지속적으로 미술관에 방문하도록 교육하는 건 우리의 몫”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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