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권 아재와 나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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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6호 38면

창권 아재와 나는 한 집안 사람이라고 하기엔 너무 달랐다. 세계관부터 다르다. 아재가 숲 전체를 본다면 나는 나뭇잎 끝을 본다. 만일 두 사람이 같은 책을 읽는다고 하자. 아재는 책의 핵심 내용과 큰 맥락을 파악하고 같은 주제를 다루는 다른 책들과의 관계 속에서 그 책의 주장을 이해한다. 반면에 나는 그런 것은 하나도 모르고 쩨쩨하게 지엽적인 문제에 집착한다. 가령 책 속의 한 구절에 마음이 흔들린다. 맞춤법 틀린 한 구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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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재는 부지런하고 나는 게으르다. 쉴 때도 무엇이든 일을 만들어 열심히 하지 않으면 죄책감이라도 느낄 것 같은 그런 사람이 아재다. 조카는 어떻게든 몸의 움직임을 최소화해서 살자는 것이 평소 생활신조인 사람인데. 나보다 서너 살이 많은 아재는 고등학교 때 잠시 내 과외선생을 했다. 우리 집이 과외선생을 둘 형편도 아니었는데 아재가 나를 가르치게 된 것은 아버지의 높은 교육열과 아들의 낮은 성적 때문이기도 했겠지만, 부지런한 아재의 성미 탓이기도 했다. 수재들만 간다는 대학에 다니던 아재는 그 무렵 휴학 중이라 부산에 내려와 지내고 있었는데, 아버지가 집안 모임에서 아재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 조심스럽게 제안한 것을 부지런한 아재가 덥석 받아들인 것이다. 게으르고 매사에 의욕이 없는 조카 녀석을 잠시나마 아재는 열심히 가르치려고 애썼다. 조카가 예뻐서라기보다 순전히 아재가 뭐든 열심인 사람이기 때문일 것이다.

얼마 전 나는 시오노 나나미의 『십자군이야기2』를 읽다가 아재를 떠올렸다. “인간은 대개 야심과 허영심을 모두 가지고 있다. 무슨 일이든 하고 싶어 하는 의욕이 야심이라면, 허영심은 남들에게 잘 보이고 싶다는 바람이다. 문제는 야심과 허영심 중 어느 쪽이 더 큰가 하는 것이며, 더 중요한 문제는 결정적인 기회나 위기 때 그 인간이 결국 야심으로 움직이는가, 아니면 허영심으로 움직이는가 하는 것이다.”

아재는 야심이 더 클 것 같다. 무엇이든 도모하는 사람. 모르면 알아야 하고, 못하는 건 해야 하고, 만일 한다면 누구보다 잘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 그래서 취미나 잡기도 공부하듯 몰두하고 집중해서 상당한 수준까지는 해내는 사람. 아재는 그런 사람이다. 반면에 나는 허영심의 인간이다. 타인의 반응이나 평가에 민감하고 그저 좋게 보이고 싶다는 생각이 자신의 말과 행동을 지배한다. 그마저도 적극적이면 좋으련만, 그저 남에게 싫은 소리 안 들을 정도로만 겨우 움직인다. 한마디로 게으른 사람이다.

이처럼 기질이 서로 정반대인데도 어쩐 일인지 조카는 아재를 따랐고, 아재는 조카를 싫다 하지 않았다. 항상 조카를 격려하고 응원해 주었다. 그러니 유유상종이란 말도 항상 맞는 말은 아닌가 보다. 나는 부끄럽지만 이번에 낸 책 『슈슈』를 아재에게 보내 드렸다. 며칠 후 아재에게서 문자가 왔다. “상득아, 네 책 재미있게 읽었다. 진솔하고 위트 있고 너다운 재치가 곳곳에서 반짝이더구나. 글의 마지막에 있는 반전도 매번 유쾌하더라. 그런데 가장 재미있고 유쾌했던 것은 68쪽에 ‘아재’와 ‘아제’ 둘 다 썼던 것과 96쪽에 ‘발을 밝고’라고 쓴 표현이다. 상득아, 정말이지 너는 웃기는 녀석이다.”

비로소 나는 아재와 내가 한 집안 사람이란 것을 실감했다. 역시 유유상종이다.


김상득씨는 결혼정보회사 듀오의 기획부장이다. 눈물과 웃음이 꼬물꼬물 묻어나는 글을 쓰고 싶어 한다. 『아내를 탐하다』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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