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세때 탈영병 저지하다 총상…잃어버린 31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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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1981년 2월 1일 오후 7시30분. 경기도 파주 금촌시장의 한 주점에 군복 차림의 안모(당시 23세) 하사가 M16 소총을 들고 들어왔다. 안 하사는 종업원·손님 등 6명을 인질로 잡았다. 여자종업원 한 명에게 총을 겨누며 “당장 부대에 전화하지 않으면 모두 죽여 버리겠다”고 위협했다. 손님이었던 정기원(당시 25세·사진)씨는 안 하사가 돌아서 있는 틈을 타 “모두 피해”라고 외치며 총부리를 두 손으로 거머쥐었다. 그 사이 인질들은 건물을 빠져나갔다. 정씨와 안 하사가 몸싸움을 벌이던 중 총알 한 발이 정씨의 왼쪽 무릎을 관통했다. 정씨는 의식을 잃은 뒤 병원으로 옮겨졌다. 이후 정씨는 안 하사가 현장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이 사건은 당시 언론에 한 줄도 실리지 않았다.

 정씨는 사고 닷새 후 육군수도통합병원으로 후송돼 8개월간 치료받았다. 치료비는 가족과 주점 주인이 부담했다. 정씨는 다리를 절게 됐다. 이후 31년간의 삶도 순탄치 않았다. 변변한 직업을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정씨는 노태우 정부가 들어선 다음부터 청와대 민원실에 줄기차게 편지를 썼다. 정씨는 “국가로부터 내 행위를 인정받고 싶었을 뿐”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늘 “검토 중”이라는 답변만 돌아왔다.

 지난해 의사상자 지원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지인으로부터 전해 들었다. 의사상자 지원제는 다른 사람의 생명이나 재산을 구하려다 숨지거나 다친 사람과 그 유족·가족에 대해 정부에서 보상하는 제도다. 보상받기 위해선 당시 상황을 증명해 줄 자료를 보건복지부 심사위원회에 제출해야 한다.

 정씨는 자료를 찾아다녔지만 경찰 기록이 화재로 사라졌고, 군에서도 병상 일지와 사고 기록이 보관돼 있지 않았다. 그는 가까스로 사고 직후 자신을 치료했던 병원 의사에게서 진료 기록을 확보할 수 있었다. 당시 주점 주인 등에게서 사실증명도 받았다.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정씨가 의사상자 판정을 받을 것이라고 장담하기 어렵다. 보건복지부가 심사 과정에서 신청 내용이 경찰·군 등의 공식 기록으로 뒷받침되는지를 중시하기 때문이다. 정씨는 “청와대 민원실에서 처음부터 적극적으로 알아봐 줬다면 마음의 상처가 덜했을 것”이라며 “복지부가 면밀하게 조사해 나의 한을 풀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정봉·위문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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