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통의 굴욕 … 주가 6분의 1 토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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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1일 비 오는 이탈리아 로마 거리에서 ‘50% 할인’ 표시를 한 베네통 매장 앞을 시민들이 지나가고 있다. 경기마저 얼어붙어 베네통은 할인 판매를 하고 있다. [로마=블룸버그]

흑인 여성의 젖을 물고 있는 백인 아이, 사제와 수녀의 키스, 피 묻은 병사의 군복…. 한때 이탈리아 패션업체 베네통의 광고는 새로 나올 때마다 화제의 중심에 섰다. 그랬던 베네통의 화려한 시절이 저물고 있다. 1일(현지시간) 파이낸셜 타임스(FT) 등 외신에 따르면 베네통의 지분 70%를 가진 이탈리아 지주회사 에디지오네 홀딩은 베네통의 상장 폐지를 검토하고 있다. 상장 폐지를 하더라도 생산·판매는 계속한다. 에디지오네 홀딩은 “베네통의 주가가 기업의 실질 가치를 반영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상장 폐지 검토 이유를 설명했다. 베네통의 시가총액은 2000년 42억 유로(약 6조1700억원)에서 현재 7억 유로(약 1조원) 규모로 줄었다.

 1965년 창업한 베네통은 그 후 30년 넘게 ‘신개념 의류업체’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다. 초기엔 알록달록한 스웨터·카디건으로 인기를 끌었고, 주문을 받고 나서 털실에 염색을 하는 식으로 생산 구조도 혁신했다. 80년대엔 연평균 30%의 성장률을 기록했다. 그러나 2000년대 중반 이후 스페인 ‘자라(Zara)’, 스웨덴 ‘H&M’과 같은 패스트패션에 밀리며 사세가 기울었다. 베네통은 상대적으로 오래되고 보수적인 브랜드로 자리하게 됐다. 그 결과 베네통·시슬리 브랜드를 가지고 있는 베네통 그룹의 지난해 수익은 2010년 대비 30% 감소했다. 반면 지난 10년간 H&M 매출은 4배, 자라는 6배 늘었다.

 자국 내 소비자에 의존했던 점도 문제가 됐다. 베네통 그룹 매출의 50%를 책임졌던 이탈리아의 경제난이 회사에 직격탄으로 돌아왔기 때문이다.

패스트 패션

잠시 매장에 나타났다 사라지는 식으로 제작·유통되는 의류. 보통 패션 업체들은 한 해 4~5차례, 계절별로 신상품을 내놓지만 패스트 패션 업체들은 1~2주 단위로 상품을 선보인다. ‘남과 같은 옷을 입고 싶지 않다’는 소비자들의 심리를 겨냥한 것이다. 2000년대 중반부터 이런 브랜드들이 나타나 이젠 패션업계의 주류로 자리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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