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가’ 무시해야 하나…참 애매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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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일한기자] “‘호가’는 믿을 게 못됩니다. 실제 집값은 더 폭락했어요.”

최근 모 민간 경제연구소가 주최한 주택시장 전망 세미나에서 강연을 하던 한 부동산 전문가는 “국민은행이나 부동산 정보업체가 제시한 주택 시세를 믿지 않는다”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호가로 만든 시세는 집값이 오를 때는 충분히 반영하지만 내릴 때는 제대로 반영하지 않아 2008년 이후 하락한 집값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며 “국토해양부의 ‘실거래가’를 직접 확인하는 게 호가로 만든 시세의 착시에서 벗어나는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이 전문가의 말처럼 국민은행이나 부동산정보업체들이 제공하는 부동산 시세는 모두 중개업자들의 말에 의존해 작성한다. 집주인이 부르는 호가를 통해 작성한 시세를 발표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집값 하락 전망하는 많은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작성한 시세를 불신한다. 집주인들의 과도한 기대치가 반영돼 하락 움직임이 제대로 포착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가격은 더 떨어졌다는 판단이다.

실거래가 현실 반영 못하는 경우 많아

그렇다면 정말 실거래가는 무조건 옳을까. 그것도 아닌 것 같다. 애매한 경우가 많다. 이런 사례다. 국토해양부 실거래가 자료를 보면 분당 이매동 이매촌 삼환아파트 전용면적 116㎡형은 최근 1년간 거래가 없었다. 2010년 12월 7억1000만원에 거래된 게 마지막 실거래가다. 이걸 이 아파트의 진짜 가격이라고 볼 수 있을까.

호가를 기초로 뽑았다는 국민은행 KB시세로 이 아파트는 현재 6억7000만원에도 거래된다. 실거래가보다 호가가 더 낮다. 호가가 오히려 하락세를 더 반영한 셈이다.

최근 주택시장이 침체되면서 거래량이 급감하는 상황에서 곳곳에서 이렇게 실거래가가 무용지물인 경우가 많다. 많게는 몇 년간 거래 실적이 없는 주택형도 많다. 실거래가를 기준으로 삼아봤자 몇 년 전 가격인 셈이다.

따라서 많은 현장 중개업소 관계자들은 “요즘 주택 가격을 정말 모르겠다”고 한다. 거래가 발생한지 오래됐기 때문에 집주인이 내놓은 집값을 시세라고 하기에도 불완전한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어떻게 봐야할까.

호가는 공산품으로 치면 ‘권장 소비자가격’이 아닐까 싶다. 권장 소비자가격은 생산자가 원가, 수요, 경기 상황 등을 고려해 임의로 붙이는 것이다. 이 가격이 너무 높아 재고가 쌓이면 기업은 결국 가격을 내려 판다. 기업이 망하면 떨이로 내놓기도 한다.

주택시장의 호가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집주인이 최근 거래가격과 거래량, 개발호재, 시장상황 등을 판단해 임의로 정한다. 개인 사정이 있으면 호가를 확 내려서 급매물로 팔기도 한다. 물론 호가가 높으면 소비자는 외면하고 집 주인은 가격을 낮춰 팔 수 밖에 없다. 자연스런 시장 작동 원리다.

그렇다면 호가를 무시해선 안된다. 시장 가격은 집값이 뛸 것이란 기대심리, 가격 하락에 대한 공포감 등 심리적인 요인도 모두 반영된다. 집주인이나 매수자의 기대심리도 가격의 일부라는 이야기다.

호가를 맹신하는 것도 문제지만 무조건 불신했다가는 빠르게 움직이는 시장의 흐름을 놓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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