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 빈튼 〈Closed Monday〉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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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까미유 끌로델〉의 앞부분을 보면 매혹적인 까미유 -이자벨 아자니가 조각을 하기 위한 흙을 한밤중에 몰래 공수해오는 장면이 있다. 새하얀 손으로 흙을 어루만지는 그녀의 눈빛은 창조의 욕구에 신비하게 취해있는 듯하다. 이 순간 '흙'은 무한한 생성과 변화가 이루어지는 '우주'이며, 예술가들의 '빛'과 '소금'이 된다.
애니메이션의 다양한 기법 중에서 그 고유한 기술적 특성을 인식시키면서도 대중적인 사랑을 폭 넓게 받아온 장르가 바로 '클레이메이션'이다.

찰흙을 애니메이션의 질료로 활용하는 것은 19세기초부터 시작되었지만, '클레이메이션'이라는 이름으로 공식적인 인정을 받게된 계기는 미국의 애니메이터 윌 빈튼이 1975년에 발표한 작품 〈Closed Monday〉이다. 캘리포니아 대학에서 건축학을 전공하던 윌 빈튼은 스페인의 건축가, 그 유명한 안토니오 가우디의 작품스타일에 큰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진흙을 건축의 소재로 사용했던 가우디의 작품들은 원형적이고 강렬하면서도 온화함을 갖춘 독창성을 보여주는데, 윌 빈튼은 이때부터 '흙'이란 소재의 무한한 가능성에 도전하게된다.

늦은 밤, '월요일은 휴관'이라는 표지판이 걸려있는 미술관에 술 취한 아저씨 위노가 들어온다. 술병을 옆에 끼고, 비틀거리며 미술관 안으로 들어온 위노는 예술품을 상대로 시비를 거는 고차원적인 술 주정을 보여준다.
초현대적인 구성회화를 바라보던 그는 어느새, 그림 속의 구도를 따라 리듬을 타고 움직인다. 잠시동안 색색의 찰흙이 화면을 메우는 생동감 있는 장면이 이어지고...

마치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를 보는 것 같은 대형 TV조형물은 지구본이 되었다가 사과로 변신하고, 다시 아인슈타인의 얼굴로 변하는 클레이메이션의 마술을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걸레질하는 옛날 그림 속의 여주인공과 대화하며 연민을 느끼던 위노는 미술관을 빠져나가려는 듯 발걸음을 돌린다. 그러나, 뒤돌아 선 그는 동상이 되어 휴관한 미술관 속에 그대로 남는다.

무엇보다 이 작품 속에서 의도된 것은 클레이메이션의 기법적인 가능성에 대한 실험이다. 술 취한 위노의 다양한 얼굴움직임은 신경질적이면서도 동정을 자아내는 현실감 있는 인물로 다가오며, 세밀하게 계산된 정교한 립싱크는 작가가 치러 냈을 엄청난 노동의 대가를 짐작케 한다.

휴관한 미술관에서 술 취한 눈으로 바라보는 예술작품이라는 설정속엔 예술의 권위와 즐거움에 대한 작가의 진지한 고민이 반영되어있다.
이처럼 치열한 '취중진담'이 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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