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S 〈시네마천국〉,무협영화의 흥망성쇠 분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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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원의 새로운 패자는 예기치 못한 곳에서 오는 법. '테크노 무협'등 변종을 내놓고는 있지만 전반적으로 주춤한 홍콩산 무협영화의 기세를 대신해 미국 할리우드자본으로 만들어진 〈와호장룡〉이 다시 세계 무협영화팬들을 흥분시킨 것처럼 말이다. EBS 〈시네마 천국〉은 '동방무협계보도' (15일 밤 10시)를 통해 이처럼 흥행과 쇠퇴를 거듭해온 무협영화사를 살펴본다.

중국의 무협영화는 무협소설의 대중적 인기에 기반해 20년대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했지만, 전성기는 이소룡의 등장과 함께 도래했다. 이소룡은 1972년작인 〈정무문〉으로 세계적인 스타로 부상,이후 〈용쟁호투〉 등에 할리우드 자본의 투자를 이끌어 내기도 했다. 하지만 이소룡의 시대는 그의 요절과 함께 이내 끝나버리고, 희극적인 무협연기로 부상한 성룡마저 무협 아닌 일반 액션 영화로 돌아서 버린다.

코미디와 액션영화에 밀려 쇠퇴하던 홍콩무협을 다시 일으킨 것은 80년대초 '소림사'시리즈와 함께 떠오른 새 스타 이연걸. 90년대초 〈소호강호〉,〈동방불패〉,〈황비홍〉 등이 연이어 흥행에 대성공을 거두면서 홍콩무협은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한다.

〈시네마천국〉의 분석이 집중하는 것도 이 시기. 전통적인 무협영화에 코미디·멜러 등 다양한 장르가 뒤섞이고 뮤직비디오같은 촬영기법도 도입됐다. 특히 남성에게 보호받는 연약한 역할이나 악녀가 전부였던 과거 무협영화의 여성과 달리 〈동방불패〉 처럼 남성보다 뛰어난 무공을 구사하는 여성이 등장한 것이 특징. 〈동사서독〉등 포스트모던 무협영화까지 시도된다.

중국에의 반환 이후 홍콩산 무협영화들은 만화를 원작으로 한 〈풍운〉 〈중화영웅〉 등 공상과학영화적 요소를 적극 차용하는 변신을 보이고 있으나 정통 무협의 재미로는 90년대초 작품들에 못미치는 상태. 이런 와중에 '정중동'의 고전적 무협미학을 화면에 구현한 〈와호장룡〉이 등장했지만,이안 감독 자신의 필모그라피에서도 예외적인 이 작품이 무협영화의 새로운 융성을 가져올 지는 미지수다.

〈시네마 천국〉이 새로운 무협 부흥의 진원지로 조심스레 점치는 곳은 오히려 한국. 연출자 이승훈PD는 "호금전 감독의 대표작 〈협녀〉(1972년)를 가야산에서 촬영했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로 과거 한때는 한국 영화계의 앞선 시스템이 홍콩영화인들에게 영향을 미쳤다"면서 〈비천무〉 등 최근까지 꾸준히 이어지고 있는 한국의 무협영화 제작노력을 다시 주목해 볼 것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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