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국왕이 나서 인공비 뿌리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4면

태국 푸미폰 아둔야뎃(78.사진) 국왕은 18일부터 모든 왕궁 행사를 중단했다. 대신 '구름씨 뿌리기'에 종일 매달리고 있다. 100년 만에 최악이라는 가뭄을 극복하기 위해서다. 그는 태국 최고 인공강우 전문가다. 2002년엔 '구름씨 뿌리기' 국제 기술특허를 획득했을 정도다.

그는 요즘 대부분의 시간을 방콕에서 100여㎞ 떨어진 후허힌에서 보낸다. 최근 '인공 강우 지휘센터'를 설치한 곳이다. 복장은 캐주얼이다. 수시로 지휘센터에 들러 직원들을 다그친다. 오후 10시엔 그날 업무결산 브리핑을 받는다. 다음날 오전 1시엔 당일 업무계획 회의를 주재한다. 22일 시작하는 인공강우 작전에는 항공기 45대가 동원된다. 1차 강우 대상지역은 22곳이다.

인공강우는 구름 속에 씨(빙정핵:氷晶核)를 뿌려 이를 중심으로 수증기가 뭉치도록 유도해 비를 내리게 하는 방법이다. 이번 작전에는 국왕의 특허기술이 동원된다. 항공기 두 대가 각기 다른 고도에서 한쪽은 드라이아이스, 한쪽은 요오드화 은을 구름 속에 뿌리는 복합기법이다.

태국의 가뭄피해가 갈수록 더해가고 있다. 쌀 생산량은 전년보다 11~14%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금액으론 2억 달러(약 2000억원)가 넘는다. 식수도 부족해 정부가 지난해 10월부터 5200만 달러를 풀어 긴급 급수 작전을 펼치고 있다. 흉작 때문에 쌀.채소.과일 가격이 50%나 올랐다.

태국뿐만 아니라 동남아 대부분과 중국 남부지역도 극심한 가뭄으로 피해를 보고 있다. 태국. 베트남.캄보디아.라오스.말레이시아.필리핀 등 7개국이 '가뭄 경보'를 내렸다.

전문가들은 "가뭄은 남아메리카 서해안을 따라 흐르는 차가운 페루 해류 속에 갑자기 난류가 흘러들어 수온이 올라가고 이상기후가 발생하는 엘니뇨 현상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베트남은 100만 명 이상이 식수 부족으로 고생하고 있다. 1977년 이후 최악이다. 말레이시아에선 지난달부터 가뭄과 고온 현상이 겹쳐 산불이 빈발하고 있다. 2580만 평 규모의 숲.초목이 불탔다. 예년보다 3~4도 더 높다. 싱가포르에서도 최근 두 달간 500여 건의 산불이 발생했다. 지난해 발생한 건수보다 많다.

캄보디아에선 70여만 명의 농민이 기근에 시달리다 못해 고리대금으로 연명한다. 중국의 광둥(廣東).하이난(海南)성은 경지 면적의 49%인 6300만 평이 말라붙었다. 800여 개의 저수지도 바닥을 드러냈다. 55년 만의 최악이다.

홍콩=이양수 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