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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잘못 배우고 있지 않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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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김근식
경남대 교수·정치학

김진 논설위원은 중앙일보 지난 16일자 칼럼에서 필자의 주장을 들었다는 이유만으로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을 비판했다. 이는 형식논리상 과도하며, 특정인의 이야기를 들었다는 이유만으로 북한을 잘못 배우고 있다고 질타하는 것은 지나친 정치적 비약이다. 김 위원이 동의하는 입장만 안 원장이 들어야 한다면 그것이야말로 편협된 불통의 리더십 아닌가.

 필자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에 대한 공소권 없음’ 주장은 김 위원장 개인에 대한 공소권이 소멸했음을 말하는 것이다. 천안함과 연평도 사건의 범인으로 김 위원장을 지목한 것은 필자가 아니라 이명박 정부다. 범인으로 지목한 김 위원장이 사망했기 때문에 형사법적으로 공소권이 소멸한 것임은 당연하다.

범인이 죽어도 범인의 아들이나 상속자에게 그 책임을 묻는다면 그것은 어불성설이다. 만약 사건의 범인을 지속적으로 추궁하려면 천안함과 연평도에 관련된 공범을 구체적으로 적시하고 찾아내야 한다. 아무리 김정일이 미워도 논리상 비약이 있어선 안 된다.

 김 위원은 김정일 개인의 행위가 아니라 국가 차원의 테러이기 때문에 책임을 끝까지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엔 가입국이고 주권 국가인 한 나라 전체를 테러집단으로 규정하는 것 자체가 과도한 논리적 비약이다.

북한체제에 복무한 모든 이를 범죄자로 간주한다면 이는 일제 강점기를 경험한 모든 이가 친일파가 되는 것과 뭐가 다른가. 국가 시스템상 모든 엘리트가 책임져야 한다면 향후 통일 과정은 폭력적 파괴 방식밖에 없을 것이다.

 천안함은 공식적으로 북이 부인하고 있고 연평도 포격은 정전체제하의 군사적 교전행위다. 따라서 천안함 사태는 북이 시인하고 실체를 규명하고 책임자를 처벌하도록 우리가 지속적으로 요구할 수는 있지만, 범인의 아들을 지목해 책임을 묻는 것이 우선일 수는 없다.

연평도 포격은 정전협정 위반으로 책임을 물을 수 있지만 그로 인해 북한 전체가 범죄 집단으로 간주되어서는 안 된다. 히틀러의 경우는 전쟁범죄이므로 종전 이후 전범재판을 통해 책임을 물었다. 우리 역시 지금의 정전 상태를 종료하고 평화협정을 통해 전쟁 책임을 공식적으로 논의해야 한다. 책임을 묻기 위해서라도 평화체제가 우선이고 이 역시 김정은의 북한과 협상해야 한다.

 본질적인 문제는 북한의 잘못된 행위를 교정하고 책임을 묻기 위해 오히려 김정은 체제의 북한과 새로운 접근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정일 이외의 천안함 관련자를 처벌하고 연평도 포격의 책임자를 처벌하기 위해서도 오히려 남북관계가 작동돼야 한다.

책임자 처벌 없이 남북관계도 없다는 이명박 정부의 고집은 책임을 묻기는커녕 한반도 문제의 객체로 전락하고 외교적 고립만 가중시키고 있다. 진범을 찾아내고 처벌하기 위해서도 남북관계는 재개되어야 한다. 김정일 위원장이 일본인 납치를 시인한 것도 북·일 관계가 진전되고 정상회담이 개최되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우리도 1·21 사태에도 불구하고 7·4 공동성명으로 남북관계가 개선된 연후에 유감 표명을 받아냈다. 아웅산 테러에도 불구하고 전두환 정권이 북한의 수해물자 지원을 수용하고 고향방문단 교환에 합의한 것은 왜일까. 휴전협상마저도 교전 상대자와 하는 것이다.

 결국 필자의 ‘공소권 없음’ 주장은 북한의 책임을 눈감자는 게 아니라 책임 규명을 위해 보다 현명한 대북 접근을 하자는 발상의 전환인 것이다. 남북관계를 한 발짝도 못 나가게 하는 전제적 접근이 아니라 남북관계를 통해 문제를 풀려는 전향적 접근이다.

김근식 경남대 교수·정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