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란 체험과 상상의 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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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교단을 떠나 늦어도 한참 늦깎이로 시집을 내게 됐다. 내 일생의 알맹이는 사회생활에도 교직에도 있지않았고 오직 시에만 있었다. 평생을 나는 학자보다도 교수보다도 시인이고자 했고 시를 고향으로 여기며 시를 살았다. "

지난 8월말 서강대 불문과 교수를 정년퇴임한 김기봉(金基鳳.65)씨가 처녀시집 〈산에 기대어 운문(雲門)을 열면〉(월인 刊)을 펴냈다.

1955년부터 최근까지 45년간 써운 시 3백여편을 담았다. 프랑스 상징주의 시인들인 보들레르.말라르메 전공학자로서 경상대.충남대.서강대에서 시론을 가르친 김씨는 "시의 준열함, 그 혹독함, 끈끈함, 꼿꼿함, 또는 그 고귀함, 아늑함, 옹골짐을 깊이 체득해 감히 함부로 시를 내볼일 수 없었다" 고 한다.

그래 시론 교수로서 문단과 출판계에 알음알음도 많을텐데 정년 다 지나고 의지처 없이 시를 펴낸 것 자체가 곧 '꼿꼿하게 시를 살고 있음' 으로 읽힌다.

"이 가을에/화사한 황혼에/노을을 안고 돌아앉은 돌담/모서리에 스산한/소슬바람을 따라/흐르던 구름이/가슴으로 얼룩지고/갑자기 소란을 일으키는 갈밭/그늘지는 가슴의/저 시린 지평에 나풀거리며/허공을 헤매도는/이파리 한 잎/마음 한 가닥" ( '이 가을에 1' 전문)

중학 3학년때 6.25를 만난 김씨는 시골 고향으로 내려가 소 꼴이나 먹이고 베는 목동생활을 했다.

소 풀을 뜯으며 찾아오는 황혼녘이면 시를 쓰기 시작한 삶이 서울 문리대 시절을 거쳐 평생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왜 진작 시단에 데뷔하지 그랬느냐는 물음에 김씨는 "50년대 문리대 분위기가 실존주의 등 철학이나 지성쪽으로만 흘렀고 또 문단의 인맥이나 파벌.경향에 휩쓸리고 싶지않았다" 고 답한다.

그래서 인가.

김씨의 시들은 세련된 맛은 덜할지라도 근원적 정서, 50년대 이후 이 파벌 저 경향으로 나뉘어 각기 그 전문의 길로 접어든 순수서정.리얼리즘.모더니즘 등을 통합하는 웅혼한 울림이 있다.

인간과 갈대와 낙엽, 황혼과 우주가 겹쳐지는 시. 평론가의 시각에서 보면 흠도 많겠지만 시로써 우리의 삶을 우주적 신화나 전설로 확산시키려는 의지가 김씨의 시에는 들어있다.

"민들레, /걸음마 떼어놓은 아기처럼 맑게/앙증스러운/민들레, 활기찬 빛으로/세상 밝히며/해를 보내고 달도 지우다/스스로도 영근 빛결이 되어/헌신하면서 홀씨 날리는/민들레, 멎을 수 없이 피어갈 피톨을/허공에 흠뻑 뿌리는/광체(光體)" 위 시 '민들레' 전문에서와 같이 김씨의 이번 시집을 읽다보면 민들레 같이 하찮은 우리의 삶도 무수한 해와 달이 영근 영겁을 이어갈 '광채' 가 된다.

"시란 궁극적으로는 느낌과 생각의, 체험과 상상의, 삶과 자아의, 나아가서는 인격과 심성의, 그리고 말과 그 틀의 집이다.

그 집에는 하늘과 땅은 물론 저들이 내놓은 자연 만상이 함께 들어와 있어서 사는 기운과 그 화율(和律)이 훈훈하고 환하게 밝혀져 있다" 는게 김씨의 시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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