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없는 병도 만들어내는 제약사 마케팅 … 솔깃해 지갑 여는 순간, 내가 지는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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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누가 내 지갑을
조종하는가
마틴 린드스트롬 지음
박세연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400쪽
1만5000원

립밤 같은 입술보호제에선 딸기향이나 박하향이 난다. 북극에 사는 것이 아닌데도 매시간 바르도록 ‘중독’을 유도하기 위한 것이다. 특히 박하향은 그 자체로는 문제가 없지만 습관을 형성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위협이 있단다. 그 때문에 미 식품의약국(FDA)은 2009년 담배에 박하향의 추가를 금하는 법안을 검토했을 정도였다.

 가임기 여성들이 수백만 년 동안 매월 호르몬 변화와 관련된 고통을 겪어왔음에도 ‘월경전 불쾌장애(FMDD)’란 ‘병’은 비교적 최근에 알려졌다. 수줍음이 성격적 질환이 아니라 ‘팍실’을 먹어야 하는 질환이고, 속쓰림 정도로만 알던 위산 역류는 잔탁 등을 먹어 치료해야 하는 ‘증후군’이 되었다. 이 모두 제약회사의 ‘공로’다.

 자못 도발적인 제목이 시사하듯 이 책은 기업이 제품과 서비스를 판매하기 위해 사용하는 마케팅 기법의 속내를 파헤치고 있다. 원제도 ‘브랜드 세례 : 기업들이 우리 마음을 조작해 구매하도록 부추기는 속임수들’이다.

 책에 따르면 기업들은 판매촉진을 위해 공포, 환상, 섹스 어필, 동질감, 추억, 건강 등 다양한 감정에 호소한다. 그 기법은 철저하고 다각적이다. 쇼핑 매장에 존슨&존슨즈의 베이비 파우더며 딸기향을 뿌려 태아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치려 할 정도다. 심지어 제약회사들은 위의 사례처럼 없는 병도 만들어낸다고 주장하면서 대형 제약회사들이 연구개발비의 두 배 가까운 홍보광고비를 쓴다는 요크대 연구팀의 조사결과를 인용하기도 한다.

 지은이는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광고대행사에도 근무했던 브랜딩 전문가에서 쇼핑학의 개척자로 변신한 인물. 그는 이 책에서 바람직한 소비를 위한 대안을 제시하지는 않지만, 우리가 ‘기업이 원하는 소비를 해왔다’는 사실을 다양한 사례를 들어 보여준다. 이를 위해 기능성 자기공명영상(fMRI) 연구나 ‘위장가족’을 이용해 구전 마케팅의 효과를 실험한 ‘모겐슨 가족 프로젝트’ 등 과학적 자료를 이용해 설득력을 높였다.

 결론은 전문가나 유명인을 이용해 감정에 호소하는 것보다 친지와 동료를 이용한, 이른바 ‘동료압박’의 효과가 더 크더라는 것이다. 그러니 인터넷으로 보통사람들이 갈수록 긴밀하게 연결되는 사회에선 교묘하지만 일방적인 마케팅이 사라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투명하고 약속을 지키는 기업만이 살아남고 번창할 것이라 경고한다.

김성희(북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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