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엄친아, 한국과 미국의 차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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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2면

정선언
경제부문 기자

세계 정보기술(IT) 업계 1위 삼성전자도 고민이 있었다. 10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만난 최지성(61) 부회장은 “소프트웨어를 중심으로 한 생태계 구축 역량은 여전히 부족하다”고 토로했다. “항상 눈을 치켜뜨고 깨어 있다”고도 했다. 세계 TV 시장 2위, 세탁기·냉장고 시장 1위 LG전자 관계자도 “소프트웨어가 만든 아이폰 쇼크를 잊지 못한다”고 말했다. 소비자가전전시회(CES)에서 만난 국내 업계 관계자들은 하나같이 소프트웨어 위기감을 이야기했다. 미키 김(36) 구글 TV사업제휴팀장을 만나 “구글이 소프트웨어 강자가 된 비결이 뭔지”를 물었던 건 그래서였다. 뜻밖에도 그는 국내 대기업 출신이었다. 그는 “개발자에서부터 프로젝트가 시작되는 문화가 생겨야 한다. 한국 대기업에선 기획자가 프로젝트를 기획하면 개발자가 지시를 받는다”고 말했다.

 -국내 기업도 그렇게 하면 될까.

 “기획하고 지시하고 추진하는 대기업 문화가 오늘의 삼성·LG를 만든 원동력이다. 그 모델에도 장점이 있다. 구글이 성공했다고 그 방법을 삼성에 적용할 순 없다.”

 - 그럼, 어떻게 소프트 파워를 키우나.

 “미국의 소프트 파워는 실리콘밸리의 벤처에서 나온다. 구글도, 애플도 실리콘밸리 출신이다.”

 한국엔 왜 그런 벤처기업이 없을까. 아이디어 많은 젊은 창업가가 투자자를 못 찾아 발을 동동 구른다는 기사를 봤던 기억이 났다. 그것 때문인지 다시 물었다. “투자 문화도 중요하다. 하지만 창업자를 인정해주는 문화가 더 중요하다”는 답이 돌아왔다.

 미국에선 대학교를 졸업하고 차고에 탁자 하나, 컴퓨터 하나 놓고 친구들과 회사를 차려도 “엄마 친구 아들은 대기업 들어갔다더라”는 말을 듣지 않는단다. 그래서 인재들이 실리콘밸리에 몰리고, 그래서 구글의 래리 페이지, 페이스북의 마크 저커버그가 나온다.

 한국의 젊은이들은 바쁘다. 고교를 졸업하면 명문대에 가야 하고, 대학을 나오면 대기업에 취직해야 한다. 적령기엔 결혼도 해야 하고 늦기 전에 아이도 낳아야 한다. 창업할 틈이 없다. 어쩌면 소프트 파워는 삼성전자의 투자계획안이나 정부 정책에 있는 게 아닐 수도 있다. 나부터 내가 가진 ‘삶의 모범답안’을 돌아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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