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35년 만에 중소기업 범위 손질

중앙일보

입력

정부가 35년 만에 중소기업 범위를 대폭 손질한 것은 제조 등 덩치 큰 전통업종 기업들이 중소기업 지원제도 우산 속에 안주하는 폐단을 줄이는 대신 지식기반 서비스업 등 21세기 유망 성장산업에 지원의 몫을 돌리겠다는 뜻으로 요약된다.

◇ 방만한 중소기업 범위 손질〓구멍가게 수준까지 합쳐 2백70여만개로 추산되는 국내 중소업체의 범위를 정하는 중소기업기본법과 시행령은 그동안 여덟차례 개정을 거치면서 관련 업종과 이익집단의 압력에 못이겨 3백10개의 특례업종을 낳았다.

역대 정권의 통치자마다 '중소기업 대통령' 을 자임했고, 국회의원들은 중소업계의 표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으며, 중소기업은 도와야 할 대상이라는 국민정서까지 가세해 업종마다 중소기업 범위를 늘려주는 특례를 남발한 것이다.

무역 등 서비스업종은 종업원이 수십명만 돼도 대기업 대접을 받았지만 자동차부품 업체는 1천명, 택시운송업은 8백명 미만이면 중소기업으로 간주돼 혜택을 누림으로써 업종간 형평성 시비가 끊이지 않았다.

예외규정이 하도 많아 중소기업 관련법은 누더기라는 혹평까지 나올 정도였다.

이번 개편안은 특례 업종이 1백52개로 가장 많았던 제조.건설.운수.광업의 종업원 기준을 3백명 미만으로 단일화해 이런 시비를 끊었다.

이들 업종의 중소기업 수가 당장 크게 줄지는 않지만 2~3년 안에 상당수가 졸업할 것으로 정부는 기대했다.

송재희 중소기업청 정책총괄과장은 "이제 중소기업도 정책자금 같은 정부 지원만 기대지 말고 자립 기반을 쌓을 때" 라며 "중소기업 정책도 보호보다 경쟁 쪽으로 방향을 틀겠다" 고 말했다.

◇ 서비스 업종 우대〓서비스업은 최저 종업원 기준을 20명에서 30명으로 늘리는 등 범위를 확대했다.

특히 영화.공연.연구개발.전자상거래.뉴스제공 등 성장업종은 종업원 범위를 50~2백명까지로 늘려 중소기업 지정에 따른 혜택을 많이 받도록 했다.

이번 개편으로 새로 중소기업에 편입하는 서비스업 관련 기업은 1만2천5백여개에 이를 것으로 중기청은 추정했다.

농.임.어업에도 중소기업 기준을 둠으로써 3천개 가량의 이 분야 중소기업이 탄생할 전망이다. 최근 1차산업에도 법인형 사업체가 늘어나는 것을 반영한 조치다.

◇ 중소기업 기준 다양화〓그동안 중소기업 여부를 재는 잣대로 종업원수(일부 자산규모) 한가지만 썼지만 앞으로 선진국처럼 매출.자본 규모를 도입해 신축성을 두기로 했다.

가령 제조.건설.운수.광업의 경우 종업원 또는 자본금 기준 가운데 한가지만 충족하면 되고, 1차산업.서비스업은 종업원 또는 매출액 기준을 병행키로 했다.

중기청 관계자는 "매출.자본이 기업의 크기를 재는 수단으로 점차 중요해지고 있고, 중소기업 범위를 급격히 바꾸는 데 따른 업계 충격을 줄이기 위한 것" 이라고 설명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